▲ 지난 14일 서울 명동역 앞 환기구 위를 한 시민이 걷고 있다. 안전 펜스나 경고판이 전혀 없는 게 현실이다. 주차된 여러 대의 오토바이도 눈에 띈다(왼쪽). 덕수궁 앞 환기구도 별다른 안전조치가 돼 있지 않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전불감증 여전한 사회
“위험하다는 생각 못했다”
환기구 위에 오토바이 주차

[천지일보=이혜림·김민아 기자] 서울시도 사고 직후 서울지역 지하철과 공동주택의 환기구 1만 8862개를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벌였다. 그 결과 1318개가 보수·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까지 공공기반시설의 부속 환기구 721개 가운데 공사가 완료된 환기구는 10.5%(76개)에 불과하다. 일반건축물의 환기구 597개는 보완이 얼마나 됐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14일 서울 명동역 4번 출구 앞에 있는 환기구는 지면과 같은 높이에 설치돼 있어 접근이 쉬웠다. 환기구 구멍을 통해서 깊이를 재어보니 4m 80㎝ 정도로 5m에 가까웠다. 이는 아파트 2층 높이다. 심지어 인근 상가의 오토바이가 환기구 위에 나란히 주차돼 있었다. 어떠한 경고문이나 차단펜스는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환기구로 의식하지 않고 지나다녔다.

명동역 근처가 직장인 김남순(56, 여)씨는 기자가 환기구라고 알려주자 깜짝 놀라며 “이 길을 자주 지나다니는데 환기구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며 “‘추락 위험!’이라고 표시를 하든지 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위험해 보인다”고 혀를 내둘렀다.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오가는 덕수궁 앞 환기구의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성인 허벅지 선, 가장 낮은 곳이 종아리 선까지로 낮았다. 이곳의 경우 경고문이 붙어 있을 뿐 안전펜스나 안전요원은 없었다. 환기구를 의자 삼아 앉아 있던 이수지(가명, 18, 여)양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안 했다. 난간 정도니 앉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공디자인의 개념을 적용해 설치된 환기구도 있지만 시민들이 인지하지 못해 문제였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앞 환기구는 얼핏 봤을 땐 조형물로 보인다. 검은색 기둥이 곳곳에 설치돼 있고 환기구로 이어지는 구조물의 높이는 성인 남성 허리춤 정도였다.

반면 국토부의 가이드라인을 지켜 공공디자인 개념을 적용한 환기구 설치사례도 있다. 지난해 설치된 지하철 2호선 아현역 환기구는 2m 이상의 강화유리벽을 설치해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했다.

지난해 11월 국토부가 마련한 ‘시민안전과 도시미관을 위한 환기구 설계·시공·유지관리 가인드라인’에 따르면 다중이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대지와 도로‧공원‧광장 등 인접부에는 가능한 한 환기구를 설치하지 않도록 배치하되, 불가피한 경우에도 도로 등 경계로부터 2m 이상 이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급기구 및 환기구의 높이는 2m 이상이어야 한다. 높이가 2m 이하로서 접근이 가능하고 설계하중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거나 확인이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차단펜스를 설치하고 경고판을 부착해야 한다. 아울러 철제 덮개의 규격‧강도에 관한 제품기준을 명시(산업표준화법에 의한 단체표준 SPS-KMIC-007-2014)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권고 사항이어서 제2, 3의 판교 환기구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경기도는 오는 20~31일 판교 환기구 참사 1주기를 맞아 지역 축제장 등 도내 주요 시설물에 대한 안전 점검에도 나선다고 14일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마저도 이벤트성으로 보여주기식의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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