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다고 한다. 또한 기록자의 개인적인 의견이 완전히 배제된다고도 할 수 없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들을 사관(史官)이라 부르고, 역사관을 흔히 사관(史觀)이라 부르지만, 개개인의 기준과 가치관 등으로 역사를 판단한다 하여 ‘사관(私觀)’이라 부르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혹은 ‘장님 코끼리 말하기’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인 듯이 말한다는 뜻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더라도 본인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닌 이상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정확하게 알기란 어렵다. 한 사람만 건너 들어도 시집도 안 간 처녀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는 식으로 와전되기 쉽듯, 역사 또한 한 다리만 건너도 이러저러한 말들이 짜깁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와 국가를 본다면 국익이요, 한 나라 안에서 본다면 권력과 이권 다툼에 혈안이 돼 있는 당파싸움과 정당싸움을 들먹이며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할 것이다. 다 국민을 위한다는 그럴싸한 포장 아래 말이다.

최근 교육부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 방침을 공식 발표하면서 찬반여론이 들끓고 있다. 교육부는 내달 2일까지 행정 예고 기간 내 의견을 수렴해 최종 확정 고시한다고 전했다. 결국 국정화가 된다는 말이다.

획일적인 역사교육에서 탈피하자는 취지 아래 2011년 검정 교과로 완전히 전환한 후 6년 만에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다시 국정으로 회귀된 것이다.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취지다.

민간 출판사가 발행해 온 현행 8종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일장일단이 있다. 획일적인 역사교육을 탈피하겠다는 취지에 만들어졌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많은 오류와 편향성 논란을 낳았다. 이와 관련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하나하나 고치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토로한 바 있다. 오류나 편향에 대한 정부의 수정권고와 명령이 통하지 않았다고 하니, 결국 국정교과서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든다는 말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찬반여론이 뜨겁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노동개혁 연계, 피켓 시위, 서명운동, 촛불집회 등을 동원해 국정화 저지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연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키워드와 이와 관련된 글에 달리는 댓글들의 전쟁도 만만치 않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릴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한 고민이 철저하게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검정 교과서든, 국정교과서든 절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것을 집필한 사람이나 단체의 생각이 그 속에 녹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역사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하자”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이왕 국정화로 가기로 했다면 무엇보다 집필진 구성을 제대로 해야 한다.

사실 국정화가 아닌 검정 교과서라 하더라도 집필진 구성에는 좌·우가 없어야 하며, 보수와 진보가 없어야 한다.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확실한 사료(증거)를 바탕으로 기술해야 한다. 2~3명의 집필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실력만 있다고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를 제대로 읽을 줄 알고, 균형감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런 균형감을 갖춘 실력 있는 필진들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논란이 많은 현대사 비중은 현재보다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교육부도 현재 5대 5인 고대·중세사와 근현대사 비중을 6대 4로 바꾸기로 했다고 하니 이 문제 또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다. 아직 역사의 당사자와 직계후손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해방전후사나 현대사를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가르쳐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이다.

사실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이 따르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것 역시 역사적 사실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 진실이듯, 밝히고 알려야 할 부분은 알려야 한다.

역사적 비판을 받아야 할 당사자가 있다면 비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 후손들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을 쏘아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고 사죄할 것이 있다면 해야 할 것이되, 이를 마녀사냥하듯 후손들에게까지 죄를 덮어씌우거나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에서 모두가 주의해야 할 것은 중립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나 그로 인한 결과가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고 해 또 다른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 이는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가 모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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