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맞는가? 10월 10일 오후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 열병식장에서의 김정은 연설은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는 무려 수십 차례 ‘인민’이란 용어를 연발했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인민중시·군대중시·청년중시’라는 3대 중시 전략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 4년차를 맞아 권력 안정을 찾아가면서 민생을 직접 책임지고 풀어나가 ‘인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건설하고 새 시대를 이끌어나갈 청년층을 집중 육성해 자신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2년째 경색된 북-중관계가 류윈산(劉雲山)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을 계기로 복원되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최근 김정은 정권의 키워드가 ‘인민’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국방력에 대한 원칙적 입장만 언급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북한이 이번 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줄곧 외친 것이 인민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열병식 육성연설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수십 차례 언급하며 오로지 인민만을 위한 국정운영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심지어 연설을 끝내면서 이례적으로 “전체 당원동지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모두 위대한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해 나갑시다!”라고 호소했다. 나아가 인민을 지칭하며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추켜세우는가 하면 존경하는 인민이라고, 나아가 허리 숙여 인사드린다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서 지난 4일 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논문에서도 그는 “인민을 하늘같이 여겨야 한다”며 인민을 무시하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투쟁을 강도높이 벌일 것을 주문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열병식 하루 전날인 9일 저녁 류윈산 상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도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평화롭고 안정적인 외부 환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민생을 내세웠다. 그런가 하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7일 ‘위대한 우리 인민-조선노동당 창건 70돌에 삼가 이 글을 드린다’ 제목의 정론에서 “내가 뼈가 부서져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민의 믿음이다. 인민의 믿음이 끊어지면 내 생명의 핏줄이 끊어지는 것”이라는 김정은의 발언을 홍보하기도 했다.

당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수해를 입은 나선시를 두 차례나 방문한 것이나 민생 시설을 집중 시찰하고 대규모 사면과 특별격려금을 지급한 것도 김정은 정권의 ‘인민 중시’를 엿볼 수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이 같은 행보는 이영호와 장성택, 현영철 숙청 및 처형 등을 통해 권력 상층부에 대한 장악을 마친 만큼 앞으로는 인민중시 정책을 통해 민생을 챙기고 민심을 잡겠다는 의도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김정은의 애민사상은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북한 사회주의, 특히 70년의 역사를 걸어온 조선로동당은 오늘 관료주의의 온상이며 나아가 관료주의의 거대한 공룡 그 자체다. 여기서 관료주의(Bureaucracy)란 직업적으로 통치하는 일에 종사하며 민중보다 위에 있는 특권적인 인간집단(관료)의 조직과 그 제도를 가리킨다. 이것을 토대로 관료주의 이데올로기가 구축된다. 관료주의는 민주주의와 대립된다. 역사적으로 관료주의는 봉건적 절대왕정의 집행기관으로서 나타나, 그 후 부르주아 혁명을 거쳐 부르주아의 이해를 옹호하는 현실적인 정치 형태가 됐다.

우리는 인민사랑을 핵심으로 하는 김정은의 애민이데올로기를 환영한다. 하지만 과연 나이 어린 김정은이 노동당 기득권층의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애민정치를 제대로 구현해 나갈지 솔직히 의문이 더 크다. 아마도 장마당 경제로 이미 떠나간 민심을 끌어당기려 인민 사랑을 강조하지만, 이미 자신들의 생명벨트에 안착한 근로대중이 노동당의 권위 아래로 들어올지 그것 또한 의문투성이다. 당원증을 배척하는 인민들과 노동당 간부 알기를 동네 강아지로 아는 상인계층이 무섭게 증대하는 오늘 김정은이 말로만 애민사상을 외친다면 자칫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일 것이다. 먼저 자신부터 인민의 편에 서서,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솔선수범을 보일 때 북한의 애민정치는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