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 미공개 사진] 일제침략·전쟁의 아픔, 피난민의 눈물을 간직한 ‘영도다리’
[영도다리 미공개 사진] 일제침략·전쟁의 아픔, 피난민의 눈물을 간직한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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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산가족 상봉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본지는 부산 영도다리(영도대교)의 지금껏 공개된 적이 없는 기록사진을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관장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다.

영도다리는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란민이 모여 이산가족이 상봉하던 장소였다. 전쟁과 피란 중에 생이별을 하게 될 때 영도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면서 헤어졌기 때문에 잃어버린 혈육과 상봉하는 약속장소로 전쟁의 아픔과 만남의 기쁨, 그리고 날마다 오랜 시간 기다려도 끝끝내 상봉하지 못한 슬픔과 애환 등이 담겨있는 장소다.

이같이 한국 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영도다리 모습의 사진을 통해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잘 성사되길 기원함과 동시에 하루빨리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1934년 10월 부산 영도 부근 매립지와 일본 거류지의 모습. 다리가 개폐되고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1936년 영도다리가 도개되자 선박이 지나가고 있다. 영도다리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1936년 영도다리가 개폐되기 전의 모습이다. 다리 위로 전차 선로가 보인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1937년 시청 앞에서 내다 본 영도다리의 모습이다. 영도다리가 도개돼 들려져 있다. 당시 부산 인구는 약 20만명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왼쪽 보이는 건물은 당시 부산 부청 건물의 모습이다. 그리고 멀리 영도다리가 들려져 있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6.25 당시 피란민의 이산가족상봉 약속의 장소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우리에겐 상징적인 다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모여든 피난민의 애절한 사연을 노래한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사다.

부산 영도다리는 일제침략의 아픔부터 분단 및 전쟁의 아픔, 철거 논란까지 굴곡진 근대사의 세월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다리다.

길이 214m, 너비 18m, 높이 7m로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連陸橋)이자 유일한 일엽식 도개교(跳開橋)인 영도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4월 20일 착공돼 1934년 11월 23일 준공됐다. 목적은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한 보급 및 수송로 구축을 위함이었다. 당시 명칭은 부산대교였으나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에게 주로 영도다리로 불리면서 대다수에게 이같이 인식됐고, 1982년 부산대교가 별도로 준공되면서 영도대교로 공식 개칭됐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이 잃어버린 혈육과 상봉하는 약속장소로 이용하면서 전쟁의 아픔과 이산가족 상봉의 장소라는 이미지가 겹쳐진 한 많은 영도다리이기 때문에 지금도 영도대교는 잘 모를지라도 영도다리하면 거의 다 알 정도로 전쟁을 겪은 세대에겐 눈물샘을 자극하는 다리다. 아울러 특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에겐 상징적인 다리다.

국내에선 유일한 도개교라 대형 선박이 지나갈 때 다리의 한쪽이 들려지는 장면은 부산의 명물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기계가 낡아지고 교통량의 증가로 1966년 9월 이후 약 47년간 도개기능은 사라졌다가 2013에 복원됐다.

한때는 일제의 잔재 건축물이란 이유에다 안전진단 검사에서 위험등급을 받아 철거 논란까지 있었으나, 한국전쟁 당시의 아픔과 애환을 간직한 곳이기도 해 교량 해체 후 복원이란 결정을 내려 2007년 확장복원공사를 착수한 뒤 2013년에 다시 태어났다.

공개된 사진에는 다리 위에 전차궤도(電車軌道)가 보이며, 도개하고 있는 장면 원경에서는 전차가 운행되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의 모습이다. 1960년대 철거된 전차선로와 현재 교량의 이전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또한 다리 주변으로 많은 일본식 건축물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이같이 영도다리 사진 몇 장을 통해 일제 침략의 아픔부터 전쟁과 피란의 아픔, 나아가 평화통일을 염원하게 돼 사진이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한편 천지일보는 지난 4월부터 광복·분단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참혹함과 피란민의 처절한 모습을 담은 ‘미국 종군기자가 본 6.25’ 전국순회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6.25사진전은 8일부터 11일까지 경기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리는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에 참여해 나흘간 전시된다. 오는 11월에는 대전시에서도 6.25사진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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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2015-10-19 13:17:41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인 영도다리,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만나기 위해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 끝내 세상을 하직한 우리 아버님이 더 생각난다.

풀잎 사랑 2015-10-19 13:14:51
도대돼 들려지는 영도다리...보고싶당!!

에리카 2015-10-10 18:37:31
저 시대에 저런 기술도 있었네? 가슴 아픈 역사가 느껴진다 저 사진들 속에서 말이지

박대연 2015-10-09 21:39:39
회색빛 사진에서 전쟁으로 인한 배고픔과 아픔과 고통이 느껴지네요.

강나루 2015-10-09 18:11:15
영도다리...가보고 싶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