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1 - 누드
박승미(1942~2014)

허리끈을 풀어 놓고 누운 여자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잠시 쉬어가고 싶은
이 봐
하고 툭 치면

나?
하고
돌아눕는
살진
여자의 누드

[시평]

투명하여 더욱 높아진 가을 하늘. 듬성듬성 떨어진 나뭇잎 사이로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가 매달려 있어, 그 가을 하늘이 더욱 투명하고 밝게 보인다. 모과라는 과일, 먹지도 못하고 다만 향기만을 맡아야 하는 과일. 그런가 하면 향기만을 우려내 차로 마셔야 하는 과일. 그래서 가을이 다 하도록 그릇에 담아두고 향기나 바라다 봐야 하는 과실.

이런 모과는 그 진하지 않은 노란 빛과 함께, 왠지 조금은 살이 오른, 그런 귀여운 여인의 누드를 바라보는 듯한 과실이다. 마치 허리띠를 풀어놓고 누워 있는 여자마냥, 편안함을 주는 과일. 그래서 경사가 급하지 않아 잠시 쉬어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드는 여자와 같은 과실.

바라다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이 봐” 하고 툭 치면, 아무러한 부담 없이 “응, 나?” 하고는 편하게 돌아눕는, 그런 여인. 그런 여인과 같은 과실인 모과가 하나 둘 성글게 매달려 있는 가을 하늘. 왠지 폭 마음을 빠뜨리고 싶은, 그런 하늘이다. 온 마음에 가을의 그 파란 물이 한껏 물들어 푸르러질 때까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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