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압구정역 스크린도어에 ‘발빠짐 주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전발판 있어도 13㎝ 틈
조금만 헛디뎌도 실족사고
지하철역 38% 10㎝ 초과
늦장대응·안전불감 지적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 지난 2월 서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A(6)양에게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아빠 B씨와 손을 잡고 있던 A양은 열차에 오르려고 하는 순간 발을 헛디뎌 승강장과 열차 틈으로 빠진 것이다. B씨가 신속하게 A양을 끌어올려 다리에 멍만 들었을 뿐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승강장과 열차의 간격은 18㎝로 어린아이가 쉽게 빠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루 약 420만명이나 되는 인원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승강장과 열차 간 떨어진 거리가 적정 안전 기준치를 미달해 승객의 발이 빠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별 다른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 안전불감증이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지하철 승강장과 열차 사이 적정거리 기준은 10㎝다. 도시철도 건설 규칙 제30조의 2(승강장의 안전시설)하에 따르면 승강장과 열차 연단의 간격이 10㎝가 넘는 부분에는 안전발판 등 실족 사고를 방지하는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또 철도시설의 기술기준(국교부 고시 2013-839호)에도 열차와 승강장 가장자리의 간격이 0.1m가 넘으면 안전발판 등 승객의 실족을 방지하는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일 기자가 찾은 1호선 서울역, 2호선 시청역, 3호선 압구정역,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찾아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을 재어보니 기준치가 훨씬 넘었다. 특히 하루 평균 3만 6000여명이 이용하는 2호선 시청역에는 안전발판을 설치돼 있었지만 약 13㎝의 틈이 생겼다. 6세 평균 신발 사이즈가 170㎜인 것을 감안하면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충분히 실족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넓이였다.

게다가 발판 쪽에 ‘주의! 전동차와 승강장 간격 21㎝’라고 적힌 경고문구 외에 안전요원이 배치돼 있지 않았다. 이용객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거나, 일행과 대화를 하다 경고문구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넓으니 내리고 타실 때 주의하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한 이용객은 이어폰을 꽂고 열차에 탑승하려다가 넓은 틈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5살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이용 한 김승희(35, 여)씨는 “유모차 바퀴가 빠진 적이 있어 지하철을 이용 할 때마다 틈으로 빠질까 봐 무서워 아이를 안아 올려 탑승한다”며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많을 땐 정말 위험하다”고 걱정했다.

직장인 이주희(가명, 25, 여)씨는 “출퇴근 시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탈 때 틈이 너무 벌어져 있어 스마트폰이 떨어질까 무서워 꼭 쥐고 탄다”며 “열차와 승강장 간격이 18㎝라고 하는데 언뜻 보기엔 20㎝가 넘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임수경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9개 노선 302개역 2만 48개소 승차위치 가운데 10㎝를 초과한 역은 38.1%(115개역 2895개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 전동차와 승강장 간격 21㎝인 압구정역. 안전발판이 설치돼 있지만 약 13㎝가 넘는 틈이 생겼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0 ~2014년 5년간 전국에서 일어난 발빠짐 사고는 모두 327건으로 연평균 65건에 이른다. 연도별로는 2010년 41건, 2011년 69건, 2012년 67건, 2013년 82건, 2014년 68건 등으로 2010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60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승강장이 곡선으로 설계돼 직선인 열차가 들어서면 휘어져 간격이 벌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설계를 곡선으로 하지 않아야 하지만 이미 완공된 지하철역에 대해선 실족 사고를 방지하는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2015년 현재 서울시는 미조치된 115개역 2895개소 역에 대해 11개역 223개소(자동식 안전발판 6개역 198개소, 고무발판 5개역 25개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나머지 104개역 2672 개소에 대해서는 2025년까지 연차적으로 안전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안전불감증 아니냐는 지적했다. 김주건(30, 남)씨는 “해마다 60여건의 실족사고가 나는데도 이렇게 늦장 대응을 하는 것은 정말로 문제”라며 “사고가 나면 다치는 건 시민들이다. 시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사고를 줄일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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