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찬노숙

이향지(1942~ )
 
얕은 화분 속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서 있는 작은 소나무는 뒤틀린 허리만큼이나 심사도 뒤틀려 얼마 안 남은 바늘잎을 바장바장 태우고 있습니다. 저 소나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살살거리는 물이 아니라 망치, 아무리 뻗대고 용기를 내어도 제 힘으로는 뚫을 수 없는 화분을 한 방에 깨트려 줄 망치. 걷고 싶은 길에서 풍찬노숙하다 웃으며 죽게, 발과 다리를 돌려주는 일.
 
[시평]

때때로 잘 관리가 된 분재(盆栽)를 보면, 인간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쭉쭉 기를 펴고 마음대로 자라나야 하는 나무를 철사로 묶고, 그래서 뒤틀어 놓고, 자라지 못하게 화분 속에 꽁꽁 묶어놓았으니 말이다. 마치 온몸을 자유자재로 구부리는 재주를 익히게 하기 위하여, 어린아이 때부터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는 곡마단 아이의 그 슬픈 몸짓, 보는 듯하다.

인간에 의하여 뒤틀리어 바장바장 속을 태우고 있을, 인간의 욕심이라는 속박 안에 묶여 있는 저 소나무. 그 소나무에게 절실한 것은 아침저녁 부어주는 물이 아니라, 저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의 욕망을 깨뜨릴 수 있는 망치라고 시인은 분노한다.

비록 풍찬노숙(風餐露宿), 비바람 치는 벌판에서 밥 지어먹고, 차가운 이슬이나 맞으며 잠이 든다고 해도, 그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다 죽을 수 있는, 그런 삶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생명의 본질이란 보살핌이라는 명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고난이 있다고 해도 자신을 쭉쭉 벋어낼 수 있는, 그런 자유스러움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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