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 미나의 자마라트 다리 위에 지난달 24일 수많은 하지 순례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번 압사 참사도 이곳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이슬람·힌두교 성지순례서 주로 압사, 대책은 없나
대책 마련보단 ‘순례객 책임전가’로 주변국 반발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이슬람권 성지순례(하지) 기간을 맞아 순례객들이 밀집한 상황에서 수백명에서 최대 수천명이 죽는 최악의 압사사고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사우디 당국은 7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하고 있으나, 이란과 파키스탄 등의 이슬람권 국가들은 최소 1000명에서 많게는 4000명 이상까지도 내다보고 있다.

특히 이번 사우디에서 발생한 하지 압사 사고로 인해 그간 갈등의 골이 깊었던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 간에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자칫 종교분쟁으로 번질까봐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슬람 성지순례뿐 아니라 인도 힌두교의 대규모 성지순례 행사인 ‘쿰브 멜라’ 역시 압사 사고가 멈추질 않고 있다. 올해도 축제기간인 7~9월 매달 수십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순례 도중 죽음은 축복’ 안전 불감증까지 한몫

해마다 유독 이슬람교와 힌두교 성지순례 도중 압사 사고하는 일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매년 반복해도 해당 당국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책 마련에 고심하기 보다는 주로 순례객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순례객 대부분이 순례 도중에 죽으면 축복이라고까지 여겨 안전 불감증에 한몫하고 있다.

◆‘돌 던지기’ 의식이 이슬람 압사사고의 주원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대사원(아지드 알하람)에서의 이슬람 최대 연례행사인 ‘하지(성지순례)’가 지난달 26일 종료된 가운데 사우디는 사망자수를 700여명으로 발표하고 있으나 주변 아랍국들은 최소 1000명 이상에서 최대 4000명 이상까지 보고 있다. 1426명이 압사한 1990년 이후 최악의 사고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는 전 세계 무슬림들이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5가지 의무 중 하나다. 사우디 메카의 카바 신전에 있는 성스러운 돌에 입을 맞추고 주위를 7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지는 이후 외곽인 미나에서 하루를 머문다. 다음날 아라파트 평원에서 일몰을 맞은 후에는 무즈달리파에서 주은 돌을 가지고 미나로 와서 ‘자마라트’라는 마귀 돌기둥에 던지는 의식으로 마무리된다. 이 돌기둥에 돌을 던지는 의식 때가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늘 압사사고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1997년과 2006년에 이 ‘돌 던지기’ 의식 과정에서 각각 270명과 364명이 사망했다. 이번 사고도 이 의식이 시행되는 도중 순례객들이 미나 인근 도로에 한꺼번에 몰리며 사망하게 된 것이다. 1990년 사고 역시 간접 원인이 돼 메카와 미나, 아라파트 평원을 잇는 보도 터널에서 1426명이 압사로 숨졌다. 이 의식과는 별개로 2004년에는 순례객 사이의 폭력 사태로 인해 244명이 압사로 숨지기도 했다.

◆책임 회피하려는 사우디, 반발하는 이란 간 충돌 우려

사우디는 매년 하지 행사로 인해 막대한 관광수익을 창출한다. 올해도 약 200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빈곤한 나라의 신자들은 평생 모은 돈으로 성지순례를 갔다 올 정도로 무슬림이라면 1번 이상은 의무를 다한다.

반복되는 압사 사고에도 여전히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안전관리에 투자하는 부분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하지행사에서 사우디는 테러 예방을 위해 많은 병력을 투입했으나 정작 안전관리 요원에는 부족했단 목소리가 높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사람들은 한 개의 터널만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었다”면서 “그렇게 많은 인원이 들어가고 나가는데 교통통제 시스템이 없었고, 장애인 화장실이나 비상탈출구 등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하지조직위원회 위원장인 사이드 오하디 역시 “사우디 당국이 사고 현장 인근의 2개 도로를 막아 이번 비극이 일어난 것”이라며 “사우디가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일부 순례객이 안전규정을 어기고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며 참사의 원인을 순례객의 무리한 행동으로 지목해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주변국들은 사우디가 시신 수습 등이 늦고 있는 데다 사망자 발생도 실제보다 적은 700여명으로 발표해 사망자 숫자를 숨기기에 급급하다며 비판을 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사우디에 성지순례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며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나 사우디는 이란이 정치적 논란거리고 삼고 있다고 맞서는 등 시아파와 수니파 양 종주국 간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언론을 통해 사우디에 강경한 대응을 경고하기도 했다.

힌두교 최대 축제인 ‘쿰브멜라’서 계속된 압사

힌두교에서도 이슬람 성지순례에 비해 사망자수는 다소 적지만 그에 못지않게 매년 인도에서 성지순례이자 최대 축제인 ‘쿰브멜라’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쿰브멜라’에서 압사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경우는 힌두교 신자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는 의식을 치를 때이다. 워낙 수천명의 많은 인파가 몰리는 데다 성스러운 강물에 몸을 담그면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는 힌두교도들은 서로 먼저 강물에 들어가려다 보니 압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올해만 해도 지난 7월 인도 남부 안드라 프라데시에서 먼저 물에 들어가려다 최소 30여명이 압사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8월에도 동부 자르칸드 주 데오가르의 한 힌두 사원에서 순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역시 11명의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3월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힌두교 축제에서도 수만명의 군중이 몰리며 10명 이상이 압사했다.

의식을 치를 때뿐 아니라 무질서하게 움직이다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올해 2월에는 인도 북부지역에서 ‘쿰브멜라’가 끝난 뒤 귀가하던 이들이 기차역에 한꺼번에 몰려 36명이 압사했고, 2008년에는 한 힌두 사원에 몰린 신자들 사이에서 ‘산사태가 날 것’이라는 소문에 우왕좌왕하다 130여명이 압사한 바 있다.

힌두교에서도 이같이 압사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 인도에서 목욕 축제인 쿰브 멜라가 펼쳐지는 고다바리강에서 9월 13일 두 번째 ‘성스러운 담그기’를 맞아 수십만의 힌두교도들이 강에 몸을 담그려고 애쓰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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