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창의문(성문 밖에서 본 모습). (사진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한양도성 4소문 중 하나로 유일하게 조선시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창의문’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4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서울 서북쪽에 있다. 1396년(태조 5) 도성 축조 시 건립돼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해 통행이 금지됐다. 이후 1506년(중종 1)에 다시 문을 열어 통행할 수 있어졌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때에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았던 역사적 무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에 타 없어졌으나 1741~1742년(영조 17~18)에 중건됐다.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이 문루 내부에 걸려 있다.

육축(陸築)은 숭례문과 흥인지문처럼 길고 네모난 장대석(長臺石)으로 축조했고, 내부에 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등성시설(登城施設)을 설치했다.

북쪽의 등성시설은 ‘ㄷ’자형의 일반적인 형태이나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해 만들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이며, 여장(女墻)은 총을 쏠 수 있는 총안(銃眼)이 없는 전돌로 축조돼 있다.

문루는 임진왜란 이후 18세기에 중건돼 큰 변형 없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도성 문루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또한 육축과 등성시설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용어설명
-육축(陸築):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쌓은 성벽
-여장(女墻):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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