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KBS수신료 인상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했다. 지난 4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KBS 수신료 인상 필요성을 거론한 뒤 방송업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거운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진보와 보수진영 간에 과거에 수신료 인상에 대해 취했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즉, 참여정부말기인 2007년에도 한 차례 KBS 수신료 인상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인상에 찬성했던 민주당 측 인사들은 이번에 반대하고 나선 반면 당시 인상에 반대했던 한나라당 인사들은 찬성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 KBS 수신료 인상에 긍정적 입장이었던 필자도 이번에는 흔쾌하게 지지하고 나설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의 입장이 바뀐 이유는 간단하다. 참여정부 때의 KBS와 현재의 KBS가 같은 방송으로 인정하기 곤란할 정도로 문제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즉 ‘올바른 공영방송’이란 잣대로 볼 때 이병순에 이어 김인규 사장이 관장하는 KBS는 이미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돼버렸다.

KBS 측이 내거는 수신료 인상 명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981년 2500원으로 정해진 뒤 29년 동안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아 공영방송으로서의 제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KBS의 경우 매출액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넘는 상황에서 수신료가 장기간 동결돼 있는 점은 재정적으로 매우 취약한 구조인 것만은 사실이다. 재정이 취약하다보니 공영방송만이 제작할 수 있는 양질의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기도 어려울 터이다.

하지만 수신료가 인상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KBS는 박권상 씨가 사장으로 재임하던 2001년 시사저널의 언론매체 관련 전문가 여론조사에서 조선일보를 누르고 영향력 1위에 오른 후, 2008년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8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선정됐다. 이는 KBS가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세우는 데 나름대로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의 한국기자협회의 여론조사에서는 8년 만에 다시 조선일보에 1위를 내주고 2위로 밀려났다.

KBS는 또한 2003년부터 5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사로 선정됐다. 국민들로부터 공정성에 관한 한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KBS는 지난해 시행된 4차례의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1위의 자리를 MBC와 한겨레에 내주었다. KBS의 신뢰도 추락의 원인은 불공정한 보도에 있다. 이는 한국기자협회가 전국 기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8%가 이병순 사장 취임 후 KBS 보도가 불공정해졌다고 답변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이 사장 취임 후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시사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가 폐지된 데 이어 여타 기획보도 프로그램도 현저하게 비판기능이 무뎌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단 프로그램의 공정성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사장 선임과정도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정연주 사장을 온갖 편법을 이용해 해임한 뒤 이병순 사장을 선임했다. 정부는 내친 김에 이 사장의 후임으로 지난 대선에서 방송전략실장이란 직함으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김인규 씨를 선임했다. 김 사장은 취임 후 친정부적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이 와중에 방송인 김제동 씨도 도중하차했다. 최근의 일련의 행태는 KBS가 사실상 공영방송이기를 포기한 것임을 보여준다. 사실상 준조세나 다름없는 수신료 인상은 KBS가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임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은 연후에나 논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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