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은 6.25 전쟁이 남긴 민족 최대의 비극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1년 8개월 만에 재개를 앞두고 있지만, 대다수 이산가족에겐 꿈에 불과한 이야기다. 1년에 한두 번씩 진행되는 이산가족 상봉 속도는 남아 있는 이산가족 규모에 비해 더디기만 하다. 수십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 문제는 통일이 되지 않고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처지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 북녘 땅의 피붙이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 이산가족의 안타까운 심정을 들어봤다.

▲ 오강린(93) 할아버지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 계시겠어? 그저 속 시원하게 고향땅이나 밟아봤으면 좋겠어.”

평남 개천군이 고향인 오강린(93, 남, 서울 강남구 일원동) 할아버지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UN군이 후퇴하던 당시 남쪽으로 사흘만 떠나있으란 권유에 여동생만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앞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터라 또 그렇게 잠시 기다리면 집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로 오씨와 여동생은 가족과 생이별했다. 당시 청년이던 오씨의 나이도 이제 아흔이 훌쩍 넘었다. 이번이 아니면 살아생전 가족을 만날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기회가 와도 몸이 약해 못 만나는 일이 없도록 건강관리도 꾸준히 했다.

명단엔 직계 가족뿐 아니라 친척과 친구까지 다 적었다. 오씨는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족을 못 만났다”며 “함께 고기를 잡고 놀던 남동생과 꼬맹이였던 조카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씨는 아들과 함께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땅을 밟아본 적이 있다. 그때 사는 게 바빠 잊고 있었던 가족이 더 그리워졌다. 오씨는 “이산가족은 다 똑같이 시대의 희생자들이다”며 “추첨하고 명단 주고받는 데 시간 끌지 말고 지역별로 기간을 줘서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씨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말을 하고 돌아섰다.

“이제 살아 있는 이산가족이 얼마나 되겠어. 고향땅 한번 밟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게 가장 잘하는 거야. 혹여 가족은 못 만나더라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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