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죽
권천학

갖고 싶었네
보길도 같은 익명의 섬 하나쯤
나대지로 누워 있는 빈터
묵밭 일궈낼 내연의 섬 하나쯤
찬바람만 들이치는
네 생애의 깎아지른 해안
그 끝없는 기다림을 붙들어 맬
심지 푸른 사내 하나쯤
숨어서도 곧은 고산죽 한 그루
가꾸고 싶었네

[시평]

‘고산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조선조의 시인 윤선도(尹善道)를 대나무와 결합해 만든 조어(造語)가 아닌가 생각된다. 윤선도의 호가 고산(孤山)이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고산 윤선도가 만년에 들어가 살았다는 보길도(甫吉島)와 함께, ‘외로운 산’, 그 고산(孤山)에서 홀로 지절(志節)을 지키는 대나무 마냥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가 추정된다.

고산죽 마냥 심지 푸른 사람이라면, 찬바람 몰아치는 깎아지른 해안, 그 끝에 서 있는 듯, 삶의 위태로움 앞에 섰을 때 자신을 붙들어 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런 사람 한 사람쯤 가슴 깊이 몰래 숨겨두고 싶은 마음, 그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외롭고 힘이 들 때, 아무도 모르게 혼자 들쳐보며 스스로의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그런 비밀, 누구나 지니고 싶지 않을까.

이 세상 나대지로 누워 있는 빈터와 같아도, 아니 오랫동안 버려둬 잡초만이 황폐해진 묵밭과 같아도, 땀 흘러 일궈내 스스로 내연의 섬으로 만들어 지니고 싶은 마음, 그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일궈놓은 그 터에 숨어, 늘 푸른 고산죽 한 그루 가꾸며 살고 싶은 그런 마음, 그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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