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베이비 소피 크루스(5)가 2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교황을 만났다. 작은 체구의 소피가 교황과 인사할 수 있도록 한 경호원(오른쪽)이 소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앵커 베이비는 미국 불법이민자들이 자동 시민권 제도를 이용해 아이를 미국인으로 만드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사진출처: 뉴시스)
교황 “나도 이민자의 아들이다”… 오바마 “환영합니다”
정계 일부 곱지 않은 시선… 의회·UN 메시지에 시선 쏠려

원주민 수만명 강제개종한 ‘세라 신부’ 시성… 원주민 반발
역대 처음 상·하원 연설하는 교황 발언에 美대선후보들 촉각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미국 방문 이틀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3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에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워싱턴D.C의 교황청 대사관저 앞에서 교황을 처음 대면한 미국 시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교황은 선대 교황들이 입었던 붉은 망토 대신 흰색 ‘수단(카속, cassock)’에 ‘주케토(교황 모자)’를 쓴 채 등장했으며, 수많은 환영 인파에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교황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동을 위해 백악관으로 향하는 차량에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 내외가 백악관 정문 앞 레드카펫 끝에 서 있다가 교황을 반갑게 맞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교황이 피아트 차량에서 내리는 순간 가톨릭 신자를 포함해 잔디 광장을 가득 메운 1만 5000명의 시민은 환호했다. 교황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새벽 5시 30분부터 몰렸다고 WP는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트위터에 “백악관에 오 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교황)이 전하는 사 랑과 희망, 평화의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 게 영감을 준다”는 환영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교황, 미국에 관용적인 이민 정책 당부

ABC, CNN 등 미국 주요 방송에 따르면 연단에 오른 교황은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민문제와 기후변화 대책 등을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또한 다양한 국제사회 이슈를 풀어가기 위한 미국의 주도적 역할도 당부했다.

교황은 먼저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서 상당수 그런 이민자 가정으로 만들어진 이 나라에 손님으로 오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도 그런 (이민자) 가족들이 건설한 나라이며, 나도 미국의 형제로서 이곳에 왔다”면서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난민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적극적이고 관용적인 이민 정책을 당부했다. 교황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온 뒤 프란치스코를 낳았다.

교황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인용해 “우리가 약속어음을 부도냈으니(환경파괴), 이제 그것을 지불할 때”라며 “기후변화는 매우 긴박하다. 더는 미래세대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공동의 집 (common home)’을 보호할 수 있는 역사 적으로 중요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며 “우리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갈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고 기후문제 해결과 환경 보호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기후변화 대책에 대해 “용기있는 일”이라고 평가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교황은 미국에서 논란이 되는 인종차별 문제와 종교의 자유 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미국 사회는 약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 완전히 통합적인 발전을 이뤄야 한다”며 “미국이야말로 차별을 거부하고, 관용적이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미국이 쿠바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데 귀중한 도움을 준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모두 지구를 보호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공유하고 있다”며 교황의 지지와 동참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교황의 연설이 끝나자 오바마 대통령은 비공개 회동에 앞서 집무실을 포함한 백악관 곳곳을 직접 안내했다.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회동 이후 백악관 앞 내셔널 몰 인근 컨스티튜션 애비뉴 등을 따라 퍼레이드를 했다. 시민들은 환호와 함께 성조기와 교황청 기를 흔들며 교황을 환영했다.

◆‘원주민 강제개종’ 신부가 성인?

퍼레이드 직후 교황은 성 매튜성당으로 이동해 주교들과 함께 기도하고, 이어 오후에는 바실리카 국립대성당을 찾아 미국에서 첫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이날 선교사인 후니페로 세라 (1713∼1784년)를 성인으로 선포함으로써 미국 땅에서 이뤄지는 첫 시성(諡聖)을 주관했다. 하지만 세라 신부가 미국 원주민을 강제로 개종시킨 전력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출신인 후니페로 세라 신부는 1769년 스페인의 캘리포니아 통치 당시 원주민 선교를 위해 10여 년간 선교원 9곳을 세우고 원주민들을 대거 개종시켜 가톨릭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라 신부의 선교 과정에서 당시 원주민 수만 명이 전염병과 영양실조, 잔혹한 대우 등을 겪으며 숨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원주민 후손들은 “우리 조상과 문화의 살인자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데 반대한다”며 교황청의 시성 추진을 거세게 반발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시성 선포에 대해 “세라 신부는 원주민을 잔혹하게 강제 개종시켰던 인물이어서 ‘논란’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서는 1만여명 이상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라 신부의 시성을 주관해서는 안 된다’는 청원 캠페인에 서명하기도 했다. 교황은 지난 7월 볼리비아 순방 기간에 “신의 이름으로 미국 원주민들에 가해진 매우 심각한 범죄”에 대해 용서를 구한 바 있다.

◆교황 발언에 美 정계 시선 집중

24일(현지시간, 한국시간 25일) 역대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연방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선다.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슈인 난민 수용 문제, 기후변화, 동성애, 인종차별 등 현안을 두고 교황이 어떠한 발언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젭 부시 등 일부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난민이나 이민자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교황의 발언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교황이 백악관에서 정치적 데뷔를 했다”는 소식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교황의 발언이 미국 정계와 종교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 가운데,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 대선 후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의회와 유엔 총회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종교계의 관심도 적지 않다. 교황은 전 세계를 돌며 종교와 민족 간의 분쟁, 전쟁 등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교황이 미국 방문 기간에 어떠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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