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략하여 저지른 악행 중 우리에게 가장 큰 폐해를 주었던 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말살 정책이었다. 조선인 이름을 일본식으로 개명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전국 유명한 산의 주봉에 쇠말뚝을 박아서 정기를 눌렀고, 기운찬 지세 흐름의 혈을 끊는다고 모조리 동강내어 훼손시켰다. 각 도, 시, 군, 동리의 고유한 명칭이나 가치 있는 문화재의 위상을 추락시키기 위해 강제로 그럴 듯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다.

경상남도 거창(居昌)에 대한제국 황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남덕유산 자락의 북상면 월성에 있는 사선대(思璿臺)이다. 고종 황제의 둘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병기지를 창설하면서 그곳에 명명한 이름이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하여 독립 군자금을 지원하고 있던 의친왕은 항일 의병기지를 만들기 위해 한양에서 거창으로 벌써 여러 번 은밀하게 잠행을 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가 거창에 항일 투쟁 기지를 만들려고 한 것은 우선 그곳이 덕유산 자락의 첩첩 산간 오지로 왜적의 눈을 쉽게 따돌릴 수 있었고 물이 풍부하여 의병을 훈련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의친왕은 조정에서 승지 벼슬을 지낸 거창 출신 정태균과 임필희, 이낭훈 등과 의병기지 창설에 대해 한 달여 기간이나 대책을 세웠다. 그들이 의병 모집을 은밀히 시작하자 뜻 있는 우국지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사선대의 ‘사선(思璿)’이란 황실의 선원(璿源)을 기린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황실의 뿌리를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또 황실은 영원히 살아서 숨 쉬며 황실의 흐름을 영원히 잇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도 했다.

사선대는 대한제국의 황실이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고자 의친왕 스스로 혼신의 노력을 다한 모습이 깃든 현장이기도 하다. 숭고한 항일 투쟁의 결사 의지가 담겨 있는 그곳을 일제가 개명한 그대로 아직도 사선대(四仙臺)로 부르고 있다. 사선대의 형상은 인위적으로 쌓은 돌탑처럼 4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 그 돌탑 위에서 신선(神仙)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인 것처럼 그럴 듯하게 왜곡시켜 퍼뜨린 일본의 간교하고 영악(獰惡)한 창지개명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항일 독립운동의 의지가 담겨 있는 사선대뿐만 아니라 일제가 저지른 우리 고유문화를 왜곡시키고 수탈한 흔적은 현재도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도 벌써 사람의 나이로 환갑을 훌쩍 뛰어 넘었다. 지명을 바르게 잡은 곳도 많으나 아직도 지리산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부르듯이 일제가 바꾸어 놓은 명칭을 그대로 방치한 채 뜻도 모르고 무의식으로 사용하는 전국의 지명도 적지 않다. 그것은 각 지역의 행정 관청이 먼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근간에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이 ‘지평면’으로 일제가 개명한 지명을 바로 찾아 놓았다. 늦은 감이 있으나 우리 땅 고유의 이름을 스스로 찾았으니 그나마 칭찬 받을 일이다. 

바르게 안 이상 이제부터라도 우리 민족의 숭고한 항일 독립투쟁 혼이 깃들어 있는 거창의 사선(思璿)대를 사선(四仙)대로 잘못 부르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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