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보수와 진보, 또는 여권과 야권으로 둘로 갈라진 우리 정치사회에서 그는 참으로 괜찮은 진보진영의 조언자였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진보진영의 지식인 그룹에서도 그는 역사적 통찰과 현실적 전략을 유연하게 조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징적 존재였다. 그의 머리는 거대한 변화를 꿈꾸었지만 그가 서 있는 땅은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서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높은 지적 수준과 품격 있는 언행은 그의 매력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는 진보진영의 큰 정치적 자산이요, 훌륭한 조언자였다. 바로 서울대 조국 교수 얘기다.

육참골단, 껍데기만 남았다

재보선에서 잇달아 참패하고 새정치연합이 큰 위기로 몰렸을 때 조국 교수는 너무도 예리하게 새정치연합 내부의 암덩어리를 지적했다. 바로 ‘친노패권주의’라는 계파주의 청산 없이는 재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그 해법으로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단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표가 스스로의 살을 도려내는 인적 혁신 없이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문재인 대표도 ‘계파주의의 기역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조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초빙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우여곡절 끝에 조국 교수는 혁신위원으로 참여했다. 사실 이 때쯤 필자도 조 교수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 교수가 혁신위에 들어갔으니 이번만큼은 ‘맹탕’으로 끝나진 않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필자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조 교수를 ‘이번 주 베스트 인물’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고 혁신위 활동도 사실상 끝났다. 그러나 혁신안 어디를 봐도 인적 혁신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육참골단도 사라져버렸다. 사실상 혁신안이 아니라 제도개선안에 불과할 정도로 초라하게 끝났다.

이쯤 되면 제대로 된 혁신을 갈구했던 사람들은 혁신위원회에, 그리고 문재인 대표에게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혁신의 줄기는 빼버리고 몇 개의 가지치기를 해놓고서는 이것을 자신의 재신임과 연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육참골단을 거론했던 당사자들은 사과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에 안철수 전 대표가 나섰다. 혁신의 본질이 아니라면서 중앙위 표결과 재신임 투표는 안 된다고 했다.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다. 이 말을 들은 조국 교수가 화답한 것은 정말 충격적이다. 조 교수는 안철수 전 대표에게 혁신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탈당’하라고 했다. 조 교수가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안철수 전 대표에게는 사리에도 맞지 않은 ‘탈당’을 거론하면서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육참골단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표에게 말 한마디 못했을까. 지식인의 한계일까. 아니면 내가 처음부터 조 교수를 잘못 봤던 것일까.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씁쓸하다 못해 참담한 심경을 가눌 수 없다. 서푼짜리 지식인의 소신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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