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도시로 유명한 홋카이도 북쪽 남북으로 긴 섬 하나. 겨울이면 혹독한 추위에 바다조차 어는 땅.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강제로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해야 했던 조선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곳 사할린.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왔지만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할린 동포들의 발자취를 취재팀이 따라가봤다.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위치한 사할린 동포마을. 아흔이 넘은 박연동 할아버지는 지난 2000년 영주 귀국을 통해 70년 만에 조국 땅을 밟았다.

무국적자로 최소한의 보호조차 못 받아온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이 실현된 것은 광복된 지 5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1989년 7월 한·일 적십자사 간의 ‘재사할린 한국인 지원 공동사업체’가 결성되고 사할린 동포들의 모국방문이 성사됐다.

평생을 러시아 혹은 무국적자로 살아온 이들에겐 지긋지긋하게 체험해온 ‘차별’이 그토록 갈망하던 고국에서의 또 다른 이산의 아픔으로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역만리 머나먼 사할린을 떠나 고국의 품에 돌아온 동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15평 규모의 영구임대주택에서 상대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2인 1가구 입주 조건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례도 있다.

취재진은 여-여 동거 커플이 살고 있는 천안의 한 아파트를 방문했다.

손자 손녀가 오면 뭐라도 주고 싶은 우리네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이 그들은 홍차와 꿀, 쿠기 비슷한 러시아식 다과를 내주며 취재팀을 반갑게 맞았다.

거실을 주방 겸 주방을 거실 겸 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두 할머니. 이제는 서로 스타일을 맞추고 적응이 됐다고는 하지만 고국에서의 삶은 그리 녹녹치 않다.

서랍장 깊은 곳에서 할머니는 두고 온 자손들의 사진을 꺼내본다. 고향과 혈육의 그리움을 안고 찾은 고국이지만 떠나온 사할린은 아직도 할머니에겐 아픈 그리움이다.

일제에 강제 징용된 아버지. 그리고 이국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리환진 할아버지는 지난 2009년에야 귀국해 천안에 터를 잡았다.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 세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사할린의 일제 때 지명은 ‘가라후토’(화태·樺太), 아이누어로 ‘자작나무의 섬’이란 뜻이다.

러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호프는 이곳을 가리켜 ‘슬픈 틈새의 땅’이라고 했던가.

1905년 러일전쟁 후 남사할린을 차지한 일본의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수만 명의 조선인이 모집이라는 이름으로 사할린에 끌려왔다.

1945년, 전쟁은 끝났고 이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부푼 희망도 잠시 귀환 대상자는 일본인으로 한정. 고국을 향한 꿈도 함께 무너진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기까지 45년간 강제동원된 조선인과 그 후손들은 사할린에 버려졌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그들을 잊었다.

(영상취재/편집: 김미라·장수경 기자)
(사할린 관련 영상제공: 지구촌동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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