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이후 한반도 통일에 대한 화두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중국이 우리나라와 통일논의를 진행한다는 소식은 뭔가 신선감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즉, 이제 중국이 드디어 북한을 버리고 우리와 손잡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섣부른 기대감마저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또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왜? 현재의 한중관계만을 놓고 본다면 중국은 더 이상 북한에 연연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전통적인 당대 당의 관계가 끝나고 정부 대 정부란 형식적인 관계로 변화됐다. 공산당과 노동당의 관계가 혈맹관계라면 정부 대 정부의 관계는 그저 우호관계일 뿐이다. 이번 베이징 9.3 전승절 행사는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일대 청사진이었다. 한쪽 귀퉁이에 서서 서성이는 북한 대표 최룡해와 망루의 중심에서 인민해방군을 사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하나로 한중관계는 유감없이 과시됐다.

통일논의라면 또 말이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중국은 아직도 북한에 대한 지정학적 활용 욕심을 던져버리기 어렵다. 북한 지역은 안보의 완충지역이자 태평양으로 나가는 출해권을 보장하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식으로 통일되어 한국의 시장경제와 중국의 시장경제가 맞물린다면 이 두 가지 지정학적 욕구는 한꺼번에 해결될 수도 있다. 물론 통일국가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따라서 중국의 이와 같은 이해관계를 얼마나 충족시켜 주느냐에 따라 그들의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통일 배려는 달라질 수 있다. 북한 또한 커다란 변수다. 북한이 현재의 세습체제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한 통일은 요원하다. 핵무기 개발과 안보위협에 따른 그들의 '통일훼방‘은 하루 이틀에 멈출 것 같지가 않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외교’에 대해 “반(反)민족적인 체제통일 계책에 대한 외세의 승낙을 받자는 역겨운 구걸질”이라며 반발하는 데서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일 ‘불신과 대결을 조장하는 통일외교 놀음’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최근 남조선 당국이 그 무슨 통일외교에 대해 떠들면서 외세와의 공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이 같이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며칠 전 해외 행각에서 돌아온 남조선 집권자가 통일을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이웃 나라와 ‘다양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떠들었다”며 “서울안보대화 개막식이라는 데서도 안보대화를 ‘통일 기반을 닦는 다자 안보 대화체로 발전’시키겠다고 떠들었다”고 박 대통령의 이달 초 방중(訪中)과 9일 서울안보대화 개막식 기조연설을 지목했다. 계속해 노동신문은 “남조선 당국자들의 속내에 대결의 앙금이 두텁게 깔려 있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민족 내부 문제인 통일 문제를 동족이 아니라 밖에 들고 다니며 ‘지지와 이해’를 청탁하는 놀음을 벌이겠는가”라고 헐뜯었다. 또 “남조선 당국자들이 들고 나온 ‘통일외교’의 보따리를 풀어헤치면 드러날 것은 그들의 골수에 배긴 ‘체제통일’ 흉계뿐”이라면서 “그들이 ‘통일외교’ 타령을 늘어놓으며 ‘지지와 이해’를 얻는다 어쩐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저들의 반민족적인 체제통일 계책에 대한 외세의 승낙을 받자는 역겨운 구걸질”이라고 비난했다.

이 정도라면 북한이 얼마나 한국과 중국의 접근과 통일논의에 발끈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다. 중국이 우리 정부에 보내는 미소가 북한에 대한 삿대질로 비치고, 또 우리의 통일논의 요청이 북한에게 체제통일·흡수통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는 일을 포기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정부는 중국과 손잡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를 줄기차게 벌여나가야 한다. 중국이 원하는 시장경제의 폭을 넓힌다는 공통점에서 출발해 신생 한반도의 통일국가가 동북아 안보에서 중국과 긴밀하게 손잡고 나간다는 보장 하나면 중국은 그 이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견제하면서 북한과 같은 골칫거리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과 이해관계의 공통분모를 가진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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