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묵직한 뱃고동 소리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뱃고동 소리는 배가 묶였던 항구와의 이별을 알린다. 동시에 어딘가의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떠나감을 고지한다. 그 특유의 바리톤 음에는 낭만이 스며있고 뭔지 모를 꿈을 부풀려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가끔은 뱃고동을 힘차게 울리고 떠나는 배에 몸을 싣고픈 충동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꿈이 있고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 특히 그러할 것 같다.

‘더 큰 대한민국 호’의 뱃고동이 울렸다. 2010년 대한민국 국민이 타고 있는 배다. ‘더 큰 대한민국 호’… 이 우람하고 멋진 이름의 배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등장한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갈 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배는 이렇게 뱃고동을 울려 놓고서도 아직 꿈의 목적지를 향한 본격적이고도 신나는 항해에는 나서질 못하고 있다. 이런 표현이 지나치게 무리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동안 매듭을 풀지 않고 쌓인 정치적 도전과 저항들이 배를 항구에 묶어 놓고 있다고 하는 비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어찌 풀어낼 것인가. 이것이 집권 3년차에 직면한 이 대통령의 가장 큰 숙제 같다. 더구나 오는 6월 지방권력의 향방을 겨루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 몰려드는 정치적 도전과 저항들도 결정적으로 고조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금년 한해 쇄도하는 도전과 응전의 정치적 결말이 나머지 집권기간의 순항여부를 결판낼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일반 국민도 관측할 수 있는 상식이다. 그만큼 금년은 세계적 경제위기를 가장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고비에 들어선 한국이나, 집권 반환점을 도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느 해보다 중요한 의미의 한 해다.

작년 말 이명박 대통령은 여야의 극렬한 대치 속에서 어렵게 새해 예산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려운 정치적 승부였다. 예산안을 얻어내는 것만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 작년 한 해는 내내 정치적으로 가시덤불을 헤쳐 온 한 해였던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과 죽음, 용산 세입자 참사 사건, 미디어법 파동 및 공영언론사 사장의 인사파문, 4대강 정비사업과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한 파열음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의 정치적 도전들이 있었다. 이런 도전들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기보다는 꿋꿋하게 맞서고 돌파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시끄럽고 잘 안 풀리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여론조사에 나타난 이대통령의 지지율이 40~50%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간 것은 이 같은 도전 속에서도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국정의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와 국민에게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아무리 실정(失政)을 들추어내려 하는 사람이나 세력이라도 이것까지를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미국발 금융위기가 만들어낸 세계적 경제위기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벗어나게 한 것은 우리보다 세계가 더 인정하는 이 대통령의 공로다. 또 앞으로 30년 동안 1천 2백조 달러 시장이 형성될 원자력발전소 건설시장에 대한 첫 진출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400억 달러(47조 원)에 달하는 원전건설 계약을 따낸 일 역시 주목받는 업적일 것이다. 외교적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의 모임인 G20정상회의를 한국에 유치한 것,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변신함으로써 국격(國格)을 과시하게 된 선진국 클럽 OECD의 DAC(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 일 등 대충 큰 것만도 손으로 꼽을 것들이 많다. 이 대통령은 또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더 진정성을 갖고 민생 현장을 찾는 대통령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모여서 국민의 지지율을 높게 끌어 올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도 이명박 대통령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강한 신념이나 ‘돌파’가 작년과 같은 괄목할 만한 국정의 효율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 풀리지 않은 정치적 매듭들을 그대로 놓아둔 채로는 얼른 그럴 것이라고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지난 11일 세종시 건설 수정안이 발표됨과 동시에 그동안 부글부글 끓던 집권 여당 내부의 분란이 터져 나왔다. 또 치열하고 공동보조로 이루어지는 야당들의 반대 캠페인과, 충청지역 주민은 물론 세종시에 지역적 이익을 빼앗길까봐 염려하는 타 지역 주민들까지 이에 가세함으로써 짙은 정치적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참으로 수습이 난감한 도전들이요 저항이다. 4대강 정비 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적 공방(攻防)은 나라를 태울 듯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므로 이런 사태는 대통령이 제시한 다른 생산적인 국정 담론을 삼켜버리는 정치적 블랙홀이 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큰 정치적 시험대에 올라섰으며 올해의 대통령의 등짐이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 같다.

‘더 큰 대한민국 호’는 순항을 해야 하는데-. 나라와 대통령 자신을 위해 의미심장한 이 해가 어떻게 마무리 될 것인가 그 귀추에 긴장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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