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처음엔 설마 거기까지 하겠느냐고 봤지만 최근엔 아예 당청정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정했다는 말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보도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도종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9일 공개한 교육부 공문(2015년 6월 2일)을 보면, 역사교과서 관련 제도개선을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적시하고 관련 문서를 함께 제출한 것으로 나와 있다. 날짜도 지난해 2월 13일이다. 당시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사실상 퇴출된 직후였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역사교과서는 결코 권력자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 권력자의 손에 맡겨질 경우, 앞으로 권력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가 함께 바뀌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찌 역사라 할 수 있으며, 우리 아이들에게 이를 온전한 역사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역사를 국정교과서로 지정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나라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 근현대사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갈등과 대립, 반목이 치열했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게다가 조선왕조 몰락 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미군정시대 그리고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과 한국전쟁까지 숨 막힐 정도로 소용돌이치던 근현대사의 갈등과 대립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항일투쟁사와 한국전쟁 전후의 남북한 정치사는 제대로 조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적대의식을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은 지금도 살아있을뿐더러 심지어 권력자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역사교과서를 권력자의 손에 맡길 경우 다시 국론이 분열되고 역사왜곡을 넘어 역사를 권력자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일선에서 역사 교육을 담당하는 다수의 교사들과 역사학자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보다 다양하고 전문화된 지식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접근이 더없이 요청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나서서 획일적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해석하겠다는 것은 무지 아니면 오만에 가깝다. 혹여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세탁하겠다는 발상이라면 민족 앞에 죄를 짓는 일이다. 지금처럼 소중한 시점에서 다시 국론을 나누고 이념투쟁과 여야 진영싸움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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