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레시피’는 일본 단편 추리 소설들을 엮은 책이다. 모두 7편의 작품이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소설의 종류를 굳이 따지자면 ‘공포소설’ 쪽에 가깝겠지만 귀신이나 유령이 또는 괴물, 살인마가 나온다든가 하는 진부한 공포장치는 설정돼 있지 않다. 이 책은 인간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괴감이나 이상 심리가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수록된 소설들은 간단하고, 질질 끌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들을 전부 읽고 나면 ‘깔끔하다’라는 인상이 뇌리에 남는다. 소설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전개로 이어져 가공할만한 심리적 압박으로 독자들의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작품들의 결말은 미완의 유언과도 같다. 심지어 도도하기까지 하다. 방금까지 긴장감에 허우적대던 독자들은 작가가 남겨 놓은 메시지를 탐닉하기 위해 온 중추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의 첫 수록 작품은 나오키 상을 수상한 바 있는 ‘히사오 주란’의 ‘귀여운 악마’다. 인간의 이상 심리를 세련되게 묘사하며 한 고학생의 죽음에 대한 집착을 맛깔스런 문체에 녹여내고 있다.

엄청난 부호의 외동딸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들어간 고학생은 외동딸의 독특한 행동에 서서히 빠져들어 간다. 기괴함이 물씬 감도는 저택에서 자란 외동딸 ‘후지’는 토끼 머리를 잘라 그 피로 요리를 한다든지, 벌레들의 다리를 잘라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일을 ‘취미생활’로 즐긴다.

고학생은 백옥 같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스스럼없이 기괴한 행동을 하는 후지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그 저택에 가정교사로 갔던 학생들이 두 명이나 연속적으로 의문사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죽음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 강박증은 고학생의 이상 심리를 동반하고 급기야 그는 ‘후지가 어떤 식으로 나를 죽일까’라는 호기심을 풀기 위해 죽음에 집착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후지에게 주지만 후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후지가 자신에게 애정이 없어서 자신을 죽여주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한다.

작품은 후지의 심부름으로 창고에 간 고학생이 대들보에 묶여 아래로 늘어진 굵은 밧줄을 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고학생은 희열에 찬 눈동자로 밧줄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제야 확실히 죽을 수 있을 것 같군.”

히사오 주란 외 지음 / 세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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