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 외국은행 지점과 사무소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승연 기자] 국내에서 고전하는 외국은행(외은)과 또한 국내 진출을 고려하는 외은을 위해 금융당국이 진입장벽을 낮추기로 했다.

4일 임 위원장은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외국은행 지점과 사무소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사무소 설치 없이도 지점 인가를 내주고, 지점 인가 시 필요한 ‘국제적 신인도’ 심사도 요건은 업무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이날 임 위원장은 “국내에 진입하려는 외국은행에 대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자율성을 높일 계획”이라며 “사무소를 우선 설치한 후 지점인가 신청을 할지 바로 지점인가 신청을 할지 해당 외국은행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지점 설치 이전에 가급적 사무소를 먼저 설치·운영토록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이런 관례가 변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BNI 은행, 중국 광대은행도 사무소 없이 바로 지점인가를 신청해 이를 심사 중이다.

또 임 위원장은 “지점 인가 시 심사하는 요건 중에 ‘국제적 신인도’가 인정될 것이라는 요건을 현재는 해석상 자산규모 등 세 가지만 보고 충족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영위하려는 업무의 범위 등을 보면서 보다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인가요건을 적용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기존에는 국제적 신인도 심사에 따라 외부신용평가등급이 투자적격이거나 자산규모와 해외지점수 중 한 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했다. 완화 결정에 따라 이젠 예금자 보호 필요성이 크지 않다면 해외 증시 상장 등 더 다양한 기준을 두고 판단하게 된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한정했던 위험가중치 0% 적용 국가에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AA-’ 이상 국가도 위험가중치 0%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어 “한국정부는 개방화·국제화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다”며 “아직 국내에 진입하지 않은 외국은행에 대해 업무 범위에 따라 진입장벽을 낮추고 행정절차상 자율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또한 외은지점 CEO들의 건의를 수렴해 지점에 대한 원화 예대율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비거주자 실명 확인 때 서류 부담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은행이 의무적으로 쌓아야 하는 예수금 규모를 산정할 때 외은지점의 경우엔 본점 차입금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본점이나 다른 국내 지점으로부터 통용한 장기차입금도 예수금으로 인정하게 된다. 이는 국내 은행들과 달리 가계대출을 취급하지 않아 자금 조달을 본점이나 지점 차입에 의존하고 있어 예대율을 국내 일반은행과 동일하게 적용할 경우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본시장법과 은행업감독규정상 중복되는 규제를 일원화하고 은행 대출채권 매매 중개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외국은행 규제완화 배경 따로있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를 두고 업계에서는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선 이번 조치는 최근 외국계 은행의 국내 이탈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 외국은행 지점은 2012년 말 56개에서 2013년 말 57개까지 늘었다가 2014년 말 48개로 다시 줄어들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 수익성 악화와 국내 규제 문제가 꼽히고 있다. 특히 국내 규제에 대한 외은들의 불만의 소리가 있었다.

외국은행 한 관계자는 “국제표준에 맞지 않는 규제와 한국계 금융사와의 차별이 영업에 영향을 끼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외국은행들의 국내 진입보다는 국내은행들의 외국 진출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인 데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시장의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은행을 비롯해 당국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글로벌 진출’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해외 금융 당국의 까다로운 장벽으로 국내 은행들의 진출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국내 진입장벽을 낮춰 외국계 은행들의 편의를 봐주고 이를 국내은행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증권가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외은들의 진입규제를 완화해도 외은들이 크게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라며 “그럼에도 이런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향후 국내은행들의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 역시 “규제를 완화해도 국내 은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당국이 국내은행들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포석을 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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