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뇌조(雷鳥)라는 새의 수컷들은 한 장소에 모여 한꺼번에 구애를 한다. 암컷들의 눈에 더 잘 띄기 위해 가슴을 잔뜩 부풀리고 춤을 추는데, 유독 무리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놈들의 성공률이 높다. 가운데 있는 수컷이 한 암컷의 눈에 띄어 짝짓기를 하면, 다른 암컷들이 와르르 몰려들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결국 한두 마리의 수컷이 거의 모든 암컷들과 짝짓기를 하고 나머지 수컷들은 헛고생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암컷들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는 수컷이 그렇지 않은 놈보다 훨씬 우수하고 매력적일 것이라고, 암컷들이 여기기 때문이다.

옷 가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이 옷이 저한테 잘 어울리나요?”라고 하는 대신 “이 옷 요즘 유행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것이다. 미용실에서도 덮어놓고 요즘 잘 나가는 아무개 머리하고 똑같이 해 주세요, 한다. 무슨 옷을 고를 것인지, 어떤 스타일의 머리 모양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보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심지어 마음이 놓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거리에 나가 보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막상 먹어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맡겨 놓은 내 돈이 당장 사라지는 게 아닌데도 은행에 몰려들어 아우성을 치기도 한다. 보고 나면 별 감흥도 없는 영화지만 남들이 다 보니까 봐 줘야 하고, 그래서 천만 관객 돌파라는 진기록이 나왔다는 뉴스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왜 우리는 유행을 좇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일까? 수리경제학자 데이비드 허슐레이퍼(David Hirshleifer)는 정보의 순차성(Informational cascad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짧은 치마를 입을 것인지, 어느 영화를 볼 것인지 등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두 개의 정보원을 참고한다. 하나는 각자의 독립된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다.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선택을 했을 경우, 자신의 의견은 무시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보잘 것 없는 자신의 판단력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득한 시절 돌멩이나 창을 던져 짐승을 잡아먹고 살 때, 무리를 지어 함께 움직여야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남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 가야 사냥감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고 홀로 짐승에게 물어 뜯겨 죽을 일도 없었다. 농사를 짓고 살면서도 한마음으로 힘을 합쳐 일도 하고 함께 놀아야 공동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어울려 살 수 있었다. 그러니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나왔고, 나서지 말고 튀지 않는 게 좋다는 어른들의 훈시도 있었던 것이다. 유행은 그런 생존의 법칙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청어나 고등어 오징어 멸치들이 떼 지어 다니는 것은, 무리 속에 숨어야 잡혀 먹을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청어나 고등어 오징어 멸치가 아닌 다음에야, 때로는 저 잘난 멋으로, 저만의 스타일로 살아봐도 좋지 않을까. 유행이 넘쳐나는 시절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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