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정의 역사’는 미화되고 포장된 유럽 왕실의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왕가(王家)의 실존적인 공허함과 고독을 주제로 한 책이다. 막강한 권력을 잡았지만 정신적 가난과 권태의 노예가 되어 급기야 타인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마저 파멸로 몰고 갔던 비참한 왕가 사람들의 사건을 적나라하게 기술한다.

이 책은 동시에 기이한 행동과 스캔들로 얼룩진 거무튀튀한 왕가의 그림자와 인간의 잔인함에 희생된 뒤숭숭한 세상의 단면들을 그대로 펼쳐낸다. 핏물이 출렁이는 지옥의 호수 같은 고문 장면은 중세의 암담함을 비추는 명경으로 작용하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던 혈우병은 근친혼의 쓸쓸한 그늘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16세기 헝가리에서 가장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출신인 ‘피의 백작부인’ 에르제베트 바토리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고문가이자 연쇄살인마였다. 빼어난 미모로 많은 남자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나다스디’를 남편으로 맞게 된다. 화가 나면 잔인하게 폭력을 휘둘렀던 나다스디는 ‘헝가리의 검은 영웅’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그의 부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악명이었다. 에르제베트는 정신분열 증상을 보이다가 급기야 짜릿함을 맛보기 위해 죽이고, 고문하고, 사지를 절단했다. 소녀들의 온몸에 꿀을 바르고 나무에 묶어 새가 쪼아 먹고, 벌레가 살점을 뜯어 먹게 내버려두기도 했다. 그녀는 결국 종신형에 처해져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20세기 왕실은 상징성만 남았지만 왕가의 스캔들은 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곤 한다. 1950년대 모나코의 그리말디 가(家)도 온갖 루머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말디 가의 레니에 3세는 할리우드 영화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을 하고 세 명의 자녀를 낳게 된다. 이 가문의 스캔들은 현모양처 이미지였던 켈리로부터 시작된다. 켈리가 결혼하기 전 그녀의 어머니가 ‘나의 딸 그레이스 켈리- 그녀의 인생과 로맨스’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켈리의 남자들이 드러난 것. 이후 소문은 철저하게 은폐됐지만, 두 딸과 아들도 다른 스캔들을 만들어내며 그리말디 가를 위기에 빠뜨린다.

‘폭정의 역사’는 단순히 광기에 대한 고찰을 벗어나 이상 증상들이나 탐욕, 스캔들이 비롯된 원인에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300개가 넘는 컬러풀한 화보는 광기의 생생함을 그대로 담아낸다.

브렌다 랄프 루이스 지음 / 말`글 빛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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