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심리전이 한반도의 세력균형을 좌우지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중 대북확성기 방송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원래 심리전 방송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전쟁 수단의 하나다. 여러 수단 중 미국의 소리(VOA, Voice of America)가 대표적 실례로 될 수 있다. 1942년 6월 전시정보국이 설치되어 적대국에 대한 선전방송으로 시작된 미국의 소리는 주로 공산권 국가에 대해 자유주의 진영의 이데올로기와 문화, 생활 수준을 소개하는 전파를 날렸다. 당시 소련에서는 자유라디오(Radio Liberty), 동유럽에서는 자유유럽라디오(Radio Free Europe)라는 이름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의 기지에서 특별방송을 했는데 공산권에 대한 방송에서는 가끔 전파방해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기간 심리전 방송이 시작되었으며 그 후 휴전선 심리전 방송으로 지속되어 오다 2004년 막을 내리게 된다. 휴전선 심리전 방송의 중단은 정확히 2004년 6월 15일 0시였다. 국방부은 철책선 부대들에게 6월 14일 밤을 기하여 간단한 선전전 중단 의식이 있다는 사항과 몇 가지 지침을 전달했다. 당시 철책선에서 근무했던 병사들의 기억에 남는 지침은 “00시 정각에 야간 경계등을 1분 동안 일제히 소등하라”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선전방송은 먼저 북측에서 “지난 50년간 함께해 준 국군 장교, 사병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멘트와 “이다음에 다시 만나요”라는 구절이 이어지는 노래가 울렸다. 남측에서도 “인민군 여러분, 그동안 함께하여 고맙습니다. 통일의 그 날 만나겠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라는 멘트와 애국가를 틀었다. 서로가 인정할 수 없었던 비무장지대의 국군과 인민군 간에 호칭을 써 준 것이다. 이번에도 북한은 고위급 접촉을 발표하면서 이상하게 ‘대한민국 국가안보실장’이란 경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심리전이다.

그러나 접촉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황병서는 돌변하였다. 남북 고위급 접촉 대표였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25일 “이번 북남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 일방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일방적인 행동으로 상대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정세만 긴장시키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병서의 발언은 북한의 지뢰 도발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남북 공동보도문에서 유감을 표명한 것과 배치된다. 이 때문에 합의 내용을 놓고 북이 딴소리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합의문 제2항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기준으로는 사과가 될지 모르나 북측이나 객관적으로 볼 때 절대로 사과가 될 수 없다. 북한이 끝까지 고집한 이 문구는 결국 지뢰 사고 그 자체를 유감이라고 한 것이지 누가 그 사고의 주체인지는 비켜간 절묘한 기술이다. 어찌 보면 황병서의 이와 같은 돌변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원래 그런 체제가 아닌가. 우리의 위대한 성과는 북한의 김정은이 얼마나 대북 심리전 확성기에 전율하고 있느냐를 이번에 정확하게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 수 없다”면, 김정은은 “대북 확성기를 코앞에 두고는 절대로 살 수 없다”는 결론을 우리는 사흘간의 긴장한 고위급 접촉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자신의 시대를 열게 될 빅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만약에 거기에 장거리로켓이나 핵 관련 내용이 있다면 우리는 가차 없이 우리의 또 다른 ‘핵무기’인 대북확성기 방송 스위치를 거침없이 눌러야 할 것이다. 이제 “핵에는 핵으로”가 아니라 “핵에는 확성기방송으로”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북한의 회담 전략에 두 번 다시 속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받아내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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