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지난 8월 22일 18시부터 북한의 고위급 접촉 제안에 따른 남북회담이 25일 01시 55분까지 무박 4일의 장장 44시간의 마라톤 회담을 통하여 6개항의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회담에 임하는 남북 양측의 주장은 양보의 대상이 아니기에 합의에 이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극적인 타결을 함으로써 전면전으로 치닫던 남북긴장이 해소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한 후 우리는 불안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6.25전쟁에 참가해서 공산군과 정전협상을 했던 미 해군제독 조이는 “공산당과는 절대로 협상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길 정도로 어렵다고 했다. 이번 북한 고위급 접촉의 44시간 회담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회담의 진행과정에서 북한이 각종 무력시위로 겁박했던 위기를 일전불사의 의지로 극복한 정부와 군의 일체된 모습은 귀감이다. 특히 우리 군의 단호한 결전의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였으며, 한미동맹 차원에서 한미연합사가 보여준 확고한 동맹 의지는 실상황에서 재확인되는 계기도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입장에서 남북협상에서 원칙을 관철시키고 포괄적인 유감과 재발방지를 받아낸 것은 향후 남북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견된다.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에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선지선자야(善之善者也)”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잘 싸운 것이다’라는 뜻인데 꼭 맞다. 이번에 우리가 안보위기에서 보여준 단합된 모습은 북한이라는 비이성적 무력집단을 대상으로 싸우지 않고 이긴 쾌거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북한과의 남북고위급 접촉을 마친 시점에서 긴장을 풀거나 마치 평화가 온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 순간에도 북한은 대남적화를 위한 전술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개석을 격파한 모택동은 그의 ‘8자 전법’에서 ‘담담타타(談談打打) 타타담담(打打談談)’이라 하여 “상대가 강할 때에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스처를 보내고, 반대로 상대가 약할 때는 가차 없이 짓밟아 버리는 위장 전법”으로 대륙을 장악했다. 북한은 얼마든지 어제의 말을 뒤집고, 오늘 다른 말을 할 집단이라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안다.

과거 북한과의 합의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화해협력합의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등이 있었지만 돌이켜볼 때 큰 기대는 금물이다. 그래서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남북화해무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그 복선에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라는 지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도 유연한 타협을 검토해 볼 단계도 되었다고 사료된다.

하지만 우선은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된 6개항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에 남북화해의 미래가 달렸다. 빠른 시일 내 남북당국회담을 개최하여 후속 사업을 추진하고, 추석을 계기로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실현되고, 남북 간 다양한 민간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제는 선언이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 이러한 실행의 연장 선상에서 남북 상호 간의 책임 있는 대화와 합의 이행을 통해서 ‘북핵과 미사일 문제’도 전향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