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수니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계속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리아 팔미라 고대유적지 파괴 만행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IS는 시리아 고대 유적 팔미라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 일생을 바친 저명 고고학자 칼레드 알 아사드(82)를 고문한 뒤 참수해 유적지 중심부의 광장 기둥에 시신을 걸어둔 데 이어 이번에는 약 2000년 전 세워진 ‘바알 샤민’ 신전을 파괴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23일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IS 대원들이 바알 샤민 주위에 대량의 폭약을 설치한 뒤 이를 터뜨렸다”면서 “이들은 폭파 시점을 미리 말해주고 주민들에게 폭파 장면을 모두 보도록 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20일 시리아 중부의 유적 도시 팔미라를 점령한 IS는 앞서서도 팔미라 산악지대에 있는 웅장한 무덤인 영묘 50여개를 파괴했으며, 이슬람교 이전에 숭배되던 아랍 여신 알랏의 이름을 딴 3m 높이의 ‘알랏의 사자상’을 파괴해 유네스코 등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IS는 테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기가 작은 유물은 암시장에 내다 팔고, 운반이 어려운 부조상은 우상물이라며 파괴 중에 있다.
참수당한 고고학자 알 아사드가 팔미라 인근까지 IS가 진격해 왔을 때도 유적지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IS가 박물관의 유물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당국을 도와 유물을 안전한 곳으로 숨기기 위해서였다. 보물 위치를 말하라는 IS의 고문에도 끝까지 인류 문화의 가치를 지켰던 것이다.
IS에 의해 이번에 폭파된 바알 샤민 신전은 기둥이 부서지면서 완전히 무너져 복구가 어렵게 됐다고 시리아 정부는 전했다.
마아문 압둘 카림 시리아 문화재청장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려했던 일들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인류 문화유산이 테러 단체에 의해 일순간에 사라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바알 샤민 신전은 고대 민족 페니키아인이 서기 17년 무렵 농사와 직결된 비의 신을 섬기기 위해 세운 곳이다.
또 구약성서에서 많이 언급되는 바알 신의 신전이기도 하다. 로마제국 시대에 증축·보완된 이 신전은 팔미라 여러 건축물 가운데서도 보존 상태가 양호해 연구 가치가 높았다. 시리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는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하는 대상(大商) ‘카라반’의 쉼터이자 동서 교류의 접점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2001년 극단주의 무장 단체 탈레반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 사라진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불상(佛像) 이후 최대 문화유산 피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