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부필(富弼, 1004~1083)은 북송시대의 명재상으로 특히 북방의 강국 요(遼)와 서북에 웅거한 서하(西夏)와의 외교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어 수십 년 동안 중원에서 전쟁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부필은 명성을 얻은 후 낙양재자로 불리었다. 이미 상당한 명성을 누리던 범중엄(范仲淹)은 부필을 만난 후 왕좌지재(王佐之才)라고 칭찬했다. 당시의 재상은 안수(晏殊)였다. 그는 20세가 되기 전에 진사가 된 기재로 ‘꽃이 언제 지는지도 모르면서, 제비가 돌아오는 것을 아는 척 했다(無可奈何花落去, 似曾相識燕歸來)’라는 유명한 명구를 남겼다. 범중엄이 부필의 문장을 안수에게 보여주었다. 한눈에 부필의 앞날을 알아본 안수가 범중엄에게 이 낙양재자가 혼인을 했느냐고 물었다. 범중엄이 아직 미혼이라고 대답하자, 안수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수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마침 지공거 진상(陳祥)에게 사윗감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진상은 안수에게 부필의 문장에는 기백이 있고, 장차 재상으로서의 재능이 보인다고 칭찬했다. 안수가 부필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생각한 범중엄은 진상과 만나 상의한 후 안수에게 부필을 사위로 삼으라고 권했다.

부필은 27세의 나이로 진사가 되었으며, 무재이등과(茂才異等科)에 급제하여 관직으로 진출했다. 하양의 절도사판관을 시작으로 산서의 강주(絳州), 산동의 운주(鄆州)에서 관직을 역임했다. 몇 년 후 산동 일대에 병란이 자주 발생했지만 주현의 장관들은 비적들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문을 열고 받아들였다가 예를 갖추어 보내주었다. 조정에서 범중엄을 비롯한 조사단을 파견했다. 부필이 범중엄에게 말했다. “주현의 장관들은 조정의 봉록을 받으면서 오히려 간사한 무리를 기르고, 비적들과 통하고 있으니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적을 소탕할 사람이 없습니다.” 범중엄이 말했다. “자네는 모르네. 토비의 세력은 강하고 산림은 멀어서 섬멸하기가 어렵네. 병력이 부족한 지방정부가 무리하여 토벌하다가는 병력과 재력을 잃고 백성들에게 고통을 줄 뿐이네. 움직이지 말고 천천히 섬멸할 방법을 찾는 것이 백성들을 보호하는 권의지계(權宜之計)일세.” 부필은 동의하지 않고 얼굴을 붉히며 은사인 범중엄에게 한사코 대들었다.

누군가 부필에게 스승에 대한 무례가 지나치다고 충고했다. 부필이 진사시에 합격했을 때 마침 황제가 현명한 인재를 구한다는 조칙을 내려 친히 천하의 사대부들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범중엄이 급히 부필을 불러 공부방과 서적을 마련해주고 전력을 다해 정무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라고 당부했다. 덕분에 부필은 황제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부필은 충고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와 범선생의 교류는 군자지교입니다. 선생이 나를 추천한 것은 나의 관점과 모든 것이 일치되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당당하게 나의 견해를 밝혀야 합니다.” 범중엄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부필은 남에게 영합이나 하는 속류와 다르다. 내가 그를 칭찬하는 것은 이러한 점 때문이다.” 부필은 매사에 자신의 주관을 밝히면서 맹목적으로 남과 부화뇌동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천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부필은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익을 중시했으며 청렴한 관리로 명성을 날렸다. ‘송패류초품행(宋稗類抄品行)’에 포함된 일화이다. 부필이 추밀사로 임명되었을 때 영종 조서(趙曙)가 천자의 보좌에 올랐다. 영종은 등극한 후 선대의 신하들에게 기념이 되도록 부친 인종의 유품을 모두 조정의 중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신하들이 모두 머리를 숙여 감사하며 상을 받고 물러갔다. 영종은 관례를 깨고 부필을 단독으로 남게 하여 특별히 몇 개의 기물을 더 주었다. 부필은 감사했지만 별도의 상을 완강하게 사양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영종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니 그렇게 사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부필은 간절한 말투로 기물의 가치는 별로 없더라도 사양한 이유는 별도의 하사품이기 때문이며, 그것을 받았다가는 만약 황제께서 예외적인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올곧게 간언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부필은 별도의 상을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공평무사함이란 낙양재자 부필과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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