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마당놀이라도 치른 듯 큰 소란이 지나갔다. 며칠 전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은 물론 이웃한 나라들까지 떨었던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여기저기에선 광복 70주년에 대한 각국 담화와 논평 등을 놓고 분석하기에 분주하다.

광복 70주년에 즈음한 각종 논과 설에 관해선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70년 전 진정한 광복이 오기는 한 것이었는지, 기념해야 할 내용은 있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광복된 지 70년이 지났으나 남과 북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북한의 도발엔 강경한 입장이지만, 한편으론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투트랙 전략이라는 대북정책만큼은 변함이 없다. 이는 긴 세월 남북갈등을 넘어 남남갈등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구태의연한 대북정책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일관계 또한 애매모호한 현실을 그저 실감해야 할 뿐이다. 여기서 잠시 지난 14일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던 수요집회서 분신한 독립운동가 후손 최현열(81)씨가 남긴 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최씨는 “광복이 되어 나라는 찾았어도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과 일제에 동조했던 부유층 그리고 영어나 소련 글을 좀 배웠다는 친미 친소주의자들은 자기들 애국심 때문에 나라를 찾았다고 각 분야에서 실권을 쥐고 나라를 다스리면서 거리를 떵떵거리며 활보하고 다닌다”고 했다. 또 그는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은 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한일관계를 우리 손으로 해결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지금도 홀로 서지 못하고 남의 도움이나 받고 사는 원통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고 탄식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태극기가 온 나라에 휘날리는데, 왜 이같이 비통한 글을 남겨야 했을까. 왜 팔순 노인께서 몸을 던져야 하는 현실이 돼야 하는 걸까. 소나기같이 지나간 광복 70주년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광복의 의미, 더 나아가 광복 70주년이 갖는 의미를 참으로 알 때, 앞으로 도래할 진정한 광복의 그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세간에선 금년의 광복절이 그 어느 해보다 뜻 깊은 이유가 7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이 ‘70’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70이 가진 의미부터 이해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약 2600년 전 중동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요 선민(選民)이던 시절, 이방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있던 기간은 70년이다. 이 70년이 차므로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풀려나게 된다. 즉, 이스라엘은 70년 만에 빛을 보게 됐으니 곧 광복을 맞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광복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제치하에서 70년 전에 이미 광복을 맞았다면, 그때의 광복이 진정한 광복이었는지를 되묻는 것이다. 70년 전 일제의 속박으로부터 몸은 풀려났으나 우리의 정신과 사상과 의식과 가치관은 또다시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당하며 지금까지 속절없이 사로잡힌 바 돼 있었다면 얼마나 이해할까. 그렇다면 70주년을 맞는 오늘의 광복절은 광복의 기쁨보다는 이 같은 현실을 깨닫는 날이 돼야 한다. 나아가 정신과 사상과 의식과 가치관의 자유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행사가 돼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성장했는지는 모르지만, 망국으로 치닫는 사대주의적 사상과 식민주의적 사상, 지나친 국수주의적 가치관 등은 우리의 합리적이며 자주적인 사상 위에 늘 군림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남과 북이 가진 사상의 벽을 넘어야 하고, 지역·빈부·남녀노소·도농·계층 간의 첨예한 남남갈등에서 벗어나 이 강산 위에 평화가 찾아올 때 진정한 광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인류 구원이라는 본질을 떠나 탐욕으로 변질돼 갈기갈기 찢긴 종교, 유불선을 포함한 모든 종교가 창조주의 뜻 아래서 하나 될 때 비로소 광복이 찾아 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은 그날의 감격을 생각하면서도 70주년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며 참 광복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기를 다짐할 때 의미가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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