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70주년이 된다고 난데없이 전야제까지 기획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치러냈다. 8월 15일이 되기 전부터 일본 아베 총리의 담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기저기서 이제는 제대로 된 사과가 필요하다며 압력도 넣었다. 일선에서부터 최고층까지 압력을 넣었던 구체적 사과의 내용은 사과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모호한 문구로 뭉뚱그려져 슬쩍 넘어가 버리고 기대에 마지않던 아베 총리의 담화는 평소 그의 행태처럼 그렇게 진행됐다.
나름 강력한 압력을 넣는다고 조건처럼 명시한 문항들은 총리의 모호한 담화 덕분에 적극적인 공세도 펼쳐보지 못하게 됐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딱 그 정도 수준에서 한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상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정황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몰아넣은 것은 남의 이목을 너무 의식함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조건을 달아 주었더라면 내가 한 말에 내 행동이 제한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복 70주년, 우리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분명 물질적인 부분은 많이 변화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황금만능의 편의주의, 자기주의가 만연한다. 과거 70여년 전의 그 혼연일체의 정신은 이제 다시 보기 힘들 만큼 많이 변했다.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불안정한 세계정세 속에 자국의 안정과 안위에 집중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세의 불안도 불안이지만 경제적 이유로도 각자의 실리추구가 무엇보다 우선시되고 있다. 이러한 실리가 우선되었다면 우리 정부의 전략은 다른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광복 70주년, 우리는 우리만의 잔치를 했다. 속은 편치 못하다. 지지부진한 경제가 그렇고 젊은이들의 실업문제가 그렇다. 온 힘을 다해 활력을 불어 넣고 있지만 까딱도 안 하는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대대적인 규모의 행사를 치렀다. 게다가 한민족인 북한과는 여전히 대치 상황이다. 대대적인 광복 70주년에 북한과는 단 하나의 이벤트도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로 애꿎은 병사 두 명의 신체만 손상당한 상태이다. 나라의 안위 또한 미군이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대고만 있다. 70여년이 지났지만 어떤 부분은 고스란히 그대로인 상태인 것이다.
축하 일색의 광복절이 아닌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을 되짚어 미래를 생각해보는 광복절이 돼야 한다. 과거 식민지가 됐을 당시에도 그랬다. 안으로는 권력다툼에 정신없었고 밖으로는 매너리즘의 외교를 펼치다가 어이없이 나라를 넘겨주었다. 과거 신문명이, 총과 기계적 무기가 파워를 발휘했다면 오늘날은 경제력이 그러한 파워를 발휘한다. 스스로 강력한 파워를 가지게 되면 알아서 주변국들이 숙이고 들어온다. 우리가 그렇게 사과를 요구하던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듯 우리가 강자가 되면 그들의 사과는 물론 그들의 필요에 의해 숙이고 들어올 것이다. 70주년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70년이 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의 힘이 어떻게 달라지는 시간을 보냈느냐가 우리의 위치를 말해 줄 것이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함이 아니라 내실이 번지르르한 나라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