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6년, 동화약방(현 동화약품) 활명수 광고 (사진제공: 동화약품)

[천지일보=김서윤 기자]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러 분야의 기업에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 활동이 한창이다. 기업들 중에서도 일제 치하 당시, 독립운동을 했거나 이를 도왔던 곳이 있다.

동화약품도 독립운동을 한 기업 중 하나다. 창업주인 민강 선생은 1909년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동청년당을 결성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소의학교, 조선약학교를 설립해 학생들을 교육했으며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와의 연락을 위해 만들어진 지하 비밀 단체 ‘서울연통부’의 행정책임자로 국내외 연락과 정보활동을 담당했다.

민강 사장이 독립운동을 하다 사망한 이후에도 이들의 활동은 계속됐다.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은 ‘조선산직장려계’ ‘신간회’ 등에서 조선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했으며 윤광열 명예회장은 광복군으로 활동한 바 있다.

또 동화약품이 개발한 활명수도 당시 상당한 역할을 했다. 활명수를 통해 독립운동가의 활동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활명수 한 병 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비싼 가격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건너갈 때 돈 대신 활명수를 휴대했다가 현지에서 판매해 자금을 마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활명수는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궁중비방에 서양의학의 장점을 더해 1897년 개발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양약이자 제약업의 시작이었다.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아울러 동화약품은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자 승전보를 알리는 축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했다. 당시 광고에서 조선 청년의 의기충천을 알려 암울한 시대에 국민들의 자부심을 북돋기도 했다.

이렇듯 동화약품은 100여년간 민족과 함께해온 국내 최장수 제약기업이다. 동화약품은 “조선시대 말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분단 등 격동의 현대사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장수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이는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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