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발표하는 ‘전후 70년 담화’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바로 이 ‘아베 담화’에 ‘사죄’ 표현이 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많은 추측성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처음 아베 담화 초안을 두고 ‘사죄’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 같더니만 얼마 되지 않아 일본 다수의 언론이 ‘사죄’라는 표현을 넣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1일 아베 총리가 담화에 ‘사죄’라는 표현을 넣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아베 정권 간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또한 NHK 역시 지난 10일 담화의 원안에 ‘침략’ ‘사죄’ ‘통절한 반성’ ‘식민지 지배’ 등의 표현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정권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아베 내각의 경우 사실상 이번 담화에 역대 정권이 했던 핵심적인 단어를 넣는다고 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어 표현방식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사죄’ 언급과 관련해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들이 (일본이) 사죄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을 넣은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니 ‘사죄’라는 직접적인 단어가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행한 만행에 대해 직접적인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으면서, 비슷한 말이나 역대 내각의 말을 인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확실하게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출발시키려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며, 오는 14일 발표될 아베 총리의 담화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 역시 아베 총리에 대해 “일본이 과거 악행으로 아시아 각국 인민들에게 저질렀던 엄청난 재난에 대해 반드시 철저하게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11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 정부의 대표인 총리는 철저한 사죄를 토대로 전철을 다시 밟지 않는다고 맹세해야 이웃국가들과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며 “(나는) 20년 전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을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역사문제에 대한 정론을 제시했고 역대 총리들은 모두 이 담화를 계승해 왔다”고 강조했다.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가 없이는 더 이상 이웃국가들은 물론이요, 전 세계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베 내각은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과거 제국주의의 환영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마음이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베 내각이 일본을 사실상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집단 자위권 법안(안보 관련 11개 법률 제·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 속이 불 보듯 훤하다. ‘집단 자위권 법안’과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전후 70년 담화’와 관련해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지난 7일 초안에는 사과에 대한 발언이 없어 같은 여당에 속해 있는 공명당이 ‘사죄’와 ‘침략’이라는 말을 넣도록 요구했다”며 “과거 태평양전쟁에 대한 반성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이후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언론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호사카 유지 교수 또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돼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비록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하더라도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가 있다면 인류 공동체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진심어린 사과가 동반된다면 말이다.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역사관을 두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두고두고 비교하는 것은 독일 역시 이웃나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그 지난 역사를 철저하게 사죄하고 반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게 가장 참혹하게 당했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인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 앞에 무릎 꿇은 빌리 브란트 총리. 1970년 12월 7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국립묘지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지금도 독일과 일본의 역사관을 비교할 때 수시로 인용되는 사진이 됐다.

빌리 브란트 총리 한 사람의 진심어린 사죄와 참회는 독일을 향해 반감을 갖고 있던 유럽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게 만들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그날의 모습을 두고 세계 언론은 이렇게 평했다.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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