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불교계 사정에 눈이 어두운 나는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과 개인적인 안면이 없다. 스님이 1986년의 저 유명한 ‘9.7 해인사 승려대회’를 주도하고 10.27법난 진상규명에 앞장선 다소 사회참여적 인물이란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간 만나 뵐 기회는 별로 없었다. 다만 지난 5월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때 4대 종단 중 불교계를 대표해서 명진스님이 장의식 집전을 할 때 잠깐 스친 적은 있었다.

바로 그 명진 스님이 기축년 세모에 속진이 난무하는 속세의 잡것들을 향해 벽력같은 일성을 날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평화방송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한 스님은 작심한 듯 그간 사회에 대해 드러내고 싶었던 속내를 낱낱이 풀어놨다. 불교 선종(禪宗)에서 스승이 참선하는 사람을 인도할 때 질타하는 일종의 고함소리를 일컫는 ‘할(喝)’이라 할 만한 질타였다.

이미 명진스님의 어록은 인터넷상에서 최고의 주목을 받으며 회자되고 있는 터여서 새삼 여기에 다시 옮기기는 뭐하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들은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르는 데가 있어 옮겨본다.

“장부일언이면 중천금이라고 했는데, 장부라는 건 리더를 이야기 하거든요. 지도자의 한 마디는 천금보다 더 무겁다고 했는데 지금 대통령의 한 마디는, 국민들이 생각할 때에, 서 푼짜리 동전만도 못 할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그런 아주 그런 세태가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대운하가 아니라고 네 번에 걸쳐 얘기했는데도 국민들이 안 믿는다는 것은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라 본다.”

“대운하로부터 시작된 4대강 문제는 수질을 개선하고 안 하고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 간에 불신과 신뢰의 문제다.”

“일단은 그동안 대통령이 국민과 약속했던 부분이 제대로 지켜졌나 재점검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 유리한 표를 얻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는 거짓말이 상습화 돼버린, 그러다보니 늑대와 양치기 소년처럼 대통령이 몇 번씩 얘기해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 사태가 초래됐다.”

“연말에 정부 여당이 예산안 강행처리하게 되면 정권퇴진 운동부터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비록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데 다소 목소리를 높여온 스님의 말씀이라고 전제하더라도 이 정도면 명진스님이 현 시국에 대해 대단히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진스님의 말씀의 배경을 요약하자면 바로 다음과 같을 것이다.

“(국민이) 대통령의 한 마디를 서푼짜리 동전만도 못할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그런 세태”가 됐는데 이는 비비케이(BBK) 사건, 도곡동 땅 소유주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에서 이 대통령의 말바꾸기가 상습화 하다 보니 이제 국민이 대통령 말을 믿지 않게 돼버렸다는 것을 개탄하고 있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말씀이 서푼짜리 동전만도 못하게 취급당하고 있음은 분명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더구나 이 같은 평가가 시중의 장삼이사가 아닌 서울 강남에서도 가장 식자층 신도가 많이 다닌다는 대찰의 주지스님의 평가라는 점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새해에는 제발 대통령의 말씀이 천금 같은 대우를 받는 세상, 그리고 대통령도 자신의 대국민 약속을 천금처럼 여기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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