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은 호랑이 엠블럼으로 크게 장식돼 있다. 두 다리를 쭉 뻗은 날래고 용맹스러운 백호랑이 한 마리가 마치 살아있는 듯 금시라도 “어흥, 내가 나가신다”며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기세이다. 그 모습만 봐도 위풍당당하고 야성미가 물씬 느껴진다.

백호랑이가 축구협회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된 건 지난 2001년. 그전까지 한국축구대표팀의 애칭은 ‘레드 데블스(붉은 악마)’였다. 1983년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멕시코 4강 신화를 달성했을 때 세계 언론에 한국의 붉은 악마들로 본격 소개되면서 한국축구와 붉은 악마는 같은 의미로 통했다. 하지만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맞붙은 벨기에의 애칭이 ‘레드 데블스’로 똑같아 한국축구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또 이미 프랑스, 잉글랜드 등 축구선진국 등은 국가대표팀 상징물로 자국의 국기보다는 어려가지 형태의 엠블럼을 선수들 유니폼에 부착해 사용했는데 한국대표팀은 태극마크의 유니폼을 입어 국제무대에서 격이 맞지 않았다.

정몽준 회장과 축구협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새로운 상징물을 물색하다 한국인이 가장 우러러보는 동물인 백호랑이를 상징물로 결정했다. 찬반양론이 있었지만 단군신화에 나올 정도로 한국인에게 경외의 대상이면서 정서적으로 친숙한 동물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또 오래 전부터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대표팀의 용맹스러움과 투지를 말할 때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표현했던 점도 반영됐다. 이러한 호랑이의 이미지를 엠블럼의 소재에 사용하여 한국 축구의 강인함과 국민들 속에 사랑받는 축구대표팀의 친밀한 이미지를 일치시킨 것이다. 이미 호랑이는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로 사용됐으며 60~80년대 최고의 야구대회인 백호기 야구대회에서도 대회 이름으로 사용돼 용맹과 승리를 상징하는 스포츠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미 한국축구대표팀도 백호를 간판 이미지로 내세운 적이 있다. 70년대 초반 축구대표팀은 ‘청룡’과 ‘백호’팀으로 이원화, 전력을 운용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무대에서 정상을 다투던 기로 대표 1진격인 청룡팀은 메르데카와 아시안게임, 2진격인 백호팀은 킹스컵 등에 출전했다. 청룡팀과 백호팀은 자체 청백전을 가져 축구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청룡팀 GK 이세연과 백호팀 GK 변호영의 수문장 대결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력적으로는 청룡팀이 앞섰지만 투지와 패기의 백호팀도 결코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여주었다.

축구협회의 백호 엠블럼은 한때 정치권의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다. 2005년 대한체육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손봉숙 의원이 “축구협회 엠블럼의 상표권은 정몽준 회장 개인 명의로 돼 있고 저작권은 축구협회 후원업체인 나이키에 있다”며 “축구협회장과 후원업체가 바뀌면 한국 축구의 상징을 하루아침에 잃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축구협회는 부랴부랴 정 회장 명의로 돼 있던 협회 엠블럼 상표권과 나이키가 갖고 있던 저작권을 각각 넘겨받고 특허청에 명의변경을 신청했다.

지난 해 초 정몽준 회장의 뒤를 이어 경기인 출신으로 새 회장이 된 조중연 회장체제로 축구협회가 바뀌었으나 백호 엠블럼은 아무런 주인의 변동 없이 그대로 사용하게 됐음을 고려할 때 정치권의 사전 문단속이 유효했음을 입증했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 호랑이해를 맞아 축구협회의 호랑이 엠블럼이 범상치 않게 느껴지고 있는 까닭은 새해가 월드컵의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해가 60년 만에 맞는 백호랑이의 해이어서 오는 6월 남아공 월드컵에서 해외 월드컵 첫 16강 진출을 노리는 한국축구에게는 호랑이에 날개를 달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밑 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이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함께 제야의 종 ‘보신각’ 타종식에 참석, 첫 새해를 맞는 의미 있는 의식을 가졌다. 힘차게 울리는 종소리에 16강 진출의 꿈도 실려 보냈을 줄 안다.

유니폼에 백호 엠블럼을 달고 뛰게 될 대표선수들이 백호의 용맹하고 날쌘 정기를 이어 받아 아프리카의 맹주 사자의 기운이 감도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60년만의 ‘호(虎)시절’을 만끽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