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한국의 ‘保守’는 사대사관과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천지일보 시론] 한국의 ‘保守’는 사대사관과 식민사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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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분단 70돌을 맞은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미래는 무엇인가. 그 어느 때보다 충격으로 다가오고 화나는 8월을 맞이한다. 여당 대표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방미 행보와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의 방일 행보와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 대표는 방미 기간 두 번에 걸친 큰 절 퍼포먼스도 모자라 “미국은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유일한 동맹”이라 했고, 나아가 “(우리에게)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가겠다”며 영원히 회자될 수밖에 없는 충격적 말과 행동을 남겼다.

박근령씨는 일본 포털사이트 니코니코와의 인터뷰에서 “자꾸 사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인데, 천황까지 합해 네 번이나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고 했으며, 또 “한일 국교정상화로 우리나라가 경제 재건을 이뤄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위로할 수 있는 나라 형편이 됐기에 일본에 대한 보상 요구를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했다. 나아가 “신사참배 문제는 내정간섭이다. 일본으로부터 사과 받으면서 포항제철 건설한 것 아니냐”는 메가톤급 충격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충분한 지적과 설명이 됐기에 굳이 토를 달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마디씩만 건네자면 한 쪽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로, 한 쪽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로 꼬집고 싶다.

이들은 하나같이 나라를 위하며 걱정한다고 말한다. 국민 대다수도 그렇게 믿고 있으며, 또 아니라고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보수 내지 보수층 지도자의 생각이 그 나라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면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여기서 핵심 보수주의자들의 생각과 국민들의 생각에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돌출 언행이 국민을 얼마나 부끄럽게 하고 화나게 하고, 나아가 외교적으로도 당황하게 하는지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핸디캡 중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사대사관(事大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이다. 이는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터 위에 역사적인 측면을 놓고 고찰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 보수를 이끄는 김무성 대표는 여당 인사들을 대동한 미국 방문을 통해 사대주의의 극치를 보여 줬고, 간접적이긴 하지만 한국 현대 정치사의 중심에 어쩔 수 없이 서 있었던 박근령씨는 일본 방문을 통해 친일적 식민사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여기서 ‘보수(保守)’의 참 뜻을 잠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보수를 단지 진보(進步)에 반하는 소극적 개념으로 봐선 안 된다. 보수 또는 보수주의란 그 나라의 정통성을 견지하며, 국익을 우선으로 하고, 한 쪽에 치우침이 없이 옳고 바른 것을 지향하며, 나아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대의적 차원에 서 있는 정치적 이념을 의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작금의 한국 보수는 분명 보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진보는 진보다운가. 진보라는 말이 무색하다할 정도로 고리타분해졌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의 외교전은 치열하다. 동북아의 기득권 싸움에서 밀리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계산에서다. 세계의 눈과 같은 한반도, 여기에는 복병이 있으니 바로 북한이다. 또 이 북한으로 인해 주변국들의 함수관계가 미묘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북한을 받치고 있는 세 기둥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김일성과 그 일가에 대한 절대적 우상화며, 하나는 핵이요, 다른 하나는 중국의 경제지원이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중국과의 관계다. 외교적으로 고립된 북한으로서는 중국을 떠나선 살아갈 수 없으며, 중국 또한 미국 내지는 미·일을 견제하기 위해선 북한을 버릴 수 없다. 최근 중국 관영매체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내달 중국 방문 가능성을 제기한 점을 봐서도 그동안 소원했던 양국 관계를 협력관계로 회복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재인식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의 이 같은 판단은 미국의 한반도 장악 의지에 쐐기를 박는 데 있어 명분을 주는 것이며, 나아가 미국뿐만 아니라 미·일 또는 한·미·일의 군사공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게 하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바로 그것이 중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9일 고노 전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에 관해 명백하게 강제 연행이 있었다”고 거듭 밝혔으며, 무라야마 전 총리는 8월 10일 즈음하여 발표할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개인적인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일본 국민의 목소리를 대신해 호소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지금 일본 정부의 과거사 부정과 역사왜곡의 논리는 아베정권의 논리일 뿐 일본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아베의 논리에 날개를 달아주는 발언은 정의도 용기도 아닌 만용이요, 국민정서를 뒤흔드는 망국적 발언이었음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이번 일로 대한민국의 지도자 반열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렇기에 나라의 주인은 역시 국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늘 깨어있어야 할 것을 이 8월을 맞으며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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