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비룡> <문장풍류삼대록> <징세비태록> 한 권에 묶어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출간한 <조선 왕실의 소설> 시리즈.

예와 형식을 중시하던 조선의 유학자들은 정해진 형식이 없는 소설문학을 일반 평민이나 아녀자들이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는 잡스러운 글로 치부하며 시문학에 비해 경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시대 소설의 주요 독자층은 왕실 사람들이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궁궐내 사람들에게 ‘소설’은 최고의 재미거리였으며,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바깥세상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은 창덕궁 낙선재에 소장됐던 낙선재본 소설을 현대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조선 왕실의 소설’ 시리즈를 내놓았다.

그 첫 번째 책은 낙선재본 소설 중 비교적 길이가 짧은 <낙성비룡> <문장풍류삼대록> <징세비태록>을 한 권으로 묶었다

낙선재는 1847년 헌종이 후궁 김 씨를 위해 지은 궁으로 김 씨가 죽은 후에 한동안 고종의 편전(便殿)으로 사용됐고, 1926년 순종이 죽은 뒤부터는 계속 순종의 계비(繼妃)에 의해 사용돼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곳에 소장돼 있던 낙선재본 소설 89종 2000여 책을 장서각으로 옮겨와 보관하다가 그간 출판요구가 많았던 낙선재본 소설을 현대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해 출간한 것이다.

낙선재본 소설은 번역소설이 700여 책이며 창작소설이 1300여 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남녀 간의 사랑, 가정사, 영웅의 일대기,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내용들로 이뤄져 있어 대부분 작품이 당시의 획기적인 사회의식을 보여준다.

먼저 이번 시리즈에 수록돼 있는 <낙성비룡>은 어쩌면 실리와 기회를 쫓으며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뒤통수를 강타할 인물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이경모’는 미련할 정도로 참을성을 가진 사람으로 과거와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닌 즐기는 ‘진짜 공부’를 한다. 우정과 사랑, 기본적인 예의를 중시한 그는 실리만 좇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할 예정이다.

두 번째 <문장풍류삼대록>은 중국 송대의 유명한 시인이자 문장가인 소동파 집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며, 가정에서 벌어지는 혼인 전후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예나 지금이나 평생의 배우자를 구하는 데에는 여간 깐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마지막 <징세비태록>은 청나라를 배경으로 충신과 간신 간 대립과 전쟁, 사랑 등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특히 청나라가 배경이라는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현실론, 즉 청나라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당시 소설치고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세 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조선 왕실의 소설’ 시리즈는 현대어본과 교주·영인본으로 두 권이 동시 출간됐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향후 바보 병신 주인공이 위대한 영웅이 되는 일대기를 다룬 <손천사영이록>을 올해 안에 낼 예정이며, 2011년에는 화씨 집안 처첩 간 갈등의 비극을 다룬 가정소설 <화문록>을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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