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https://youtu.be/VTulUFGI5Ic ]
부품 녹슬어도 신차로 판매… 소비자 항의엔 “고발하라” 응대
英본사 “녹슨 부품 문제 없다”… 전문가 “철저한 방청 했어야”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지난 7월 15일 우리나라 자동차정비 명장이 있는 인천의 한 정비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구입한지 10일 만에 부품부식이 발견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차량을 살펴봤다.
바퀴 부근의 드라이브 샤프트(구동축, CV조인트)와 축들을 연결하는 부품인 플랜지 등이 벌겋게 녹슬어 있었다. 은색으로 빛나야 할 알루미늄 미션에도 곰팡이처럼 하얀색 녹이 있었다. 손으로 문지르니 녹이 먼지처럼 날렸다. 검은색으로 도색된 하부 중앙 프레임 역시 진흙이 튄 것 같이 녹이 번져 있었다.
박병일 자동차정비 명장은 “미션의 알루미늄 표면을 비롯해 곳곳에 녹이 생겨 부식이 시작된 것”이라며 “특히 미션 부분 녹은 다른 곳보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션 부분은 차량 운행을 위한 핵심 부품이고 교체할 경우 고가(高價)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명장은 “수입차는 배로 운송되기 때문에 대게 방청 작업을 철저히 하고 국내에 도착해서도 PDI(출고 전 점검) 센터에서 확인 후 녹이 있으면 제거한다”며 “하지만 이 차는 그런것 같지 않고 마치 오프로드를 많이 다닌 중고차 같다”고 진단했다.
해당 차량은 운행일수가 10일에 불과한 새 차다. 차주 박찬호(가명)씨는 새 차를 받아서 험로를 다니거나 염분이 많은 바닷가를 간 적도 없고 어디에 긁힌 적도 없다. 하지만 4월 말에 신차를 출고 받은 후 10일 만에 부식 부품들이 발견됐다.
최근 랜드로버에서 신차를 구입했다가 박씨와 같이 하부 부식을 발견한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본사 측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소비자 불만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영국 본사 “신차 하부 녹 문제 없다”
“타국 조용한데 한·일 유별나” 막말도
박씨는 지난 4월 서울 한남동에 있는 판매사 ‘ㅇ’사에서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를 구매했다. 그가 차량 부식을 발견한 것은 사이드스텝(차량옆 발판)을 달면서다.
발견 직후 판매사를 방문해 항의했지만 영업직원(딜러)은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딜러는 “10년간 수입차의 하부 부식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왔지만 본사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이 때문에 자신이 조치를 취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에도 본사의 입장을 확인했지만 ‘드라이브 샤프트 등은 녹이 있어도 성능 및 내구성에 문제가 없다’는 답을 받았기 때문에 부품 교환이나 차량 교환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본사에서는 다른 나라에선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데 한국과 일본만 유독 불만을 표한다는 말을 한다”며 “차라리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하거나 법적 대응을 하는 게 빠르다”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간 국내 소비자에 의해 하부 부식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현재 영국 본사는 하청 부품업체로부터 도색된 부품을 납품받아 조립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방청(防錆)을 하지 않은 기존 부품도 섞여서 사용된다는 점이다. 방청은 녹을 방지하기 위한 처리를 말한다.
박씨의 차가 이에 해당한다. 실제 그의 차량은 자동차 구동을 담당하는 부품인 드라이브 샤프트 일부는 도색이 돼 있고 일부는 방청되지 않아 녹슬어 있었다. 반면 동일한 차종을 구입한 다른 소비자의 차랑은 해당 부품이 검은색으로 도색돼 있다.
랜드로버 하부 부식 사례는 랜드로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소비자는 계속 불만을 표하고 있음에도 회사의 미흡한 품질 관리나 소비자 대응 서비스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곳이 없는 상태다.
박씨는 “1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누구는 새 차를 받고 누구는 녹슨 차를 받아야 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또한 그는 딜러가 이런 문제를 이미 알았으면서도 감춘 사실에 더 분개했다. 박씨는 “보상은 커녕 오히려 딜러는 판매를 위해서 앞으로도 이를 알리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며 “이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딜러가 말한 재규어 랜드로버 영국 본사와 랜드로버 코리아의 공식 입장이라고 하는 내용들이 사실인지 문의했다. 방청 처리를 하지 않은 부품을 사용하는지, 성능 상에 문제가 없다 하여 부식된 신차를 교환을 해주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등 10가지 이상의 질의문을 발송했다. 영국 본사는 이메일 수신확인은 했지만 답변이 없었고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는 차량 하부 부식에 대한 공식 보증 기준에 대해서만 답을 해왔다.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에 따르면 부식 관련 보증기간은 신차 출고일로부터 6년이다. 부식 보증 적용 범위는 차체 외판(도장이 완료된 상태에서 타인이 표면 도장 상태의 흠집을 알 수 있을 정도)이 녹슬거나 부식으로부터 생긴 결함을 교체 또는 수리할 경우가 해당한다.
전문가 “랜드로버, 한국 소비자 무시하는 행태”
“2~3년 전, 하부 부식 문제로 취하 사례 있어”
재규어 랜드로버의 ‘방청 처리 미흡 및 소비자 대응 소홀’과 ‘유독 한국 소비자가 항의한다’는 부분에 대해 전문가와 완성차 및 부품제조 업계, 차량 관련 연구소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새차가 10일 만에 운행하다가 차가 녹 슬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차를 받았을 때부터 녹이 슬어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만약 그랬다면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과 일본 소비자만 유독 항의를 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수입차에 있어서 한국 판매 비중이 글로벌 판매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 그런 말을 한 것은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동차는 10~20년을 쓰는 제품이기에 방청 처리 등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특히 억대의 값을 받는 차라면 더 신경쓰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입차들의 하부 부식은 이미 2~3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문제가 돼왔다. 문제가 대두되면서 ‘취하(인수 계약을 취소)’ 사례도 생겼다. 김 교수는 “취하 사례 이후부턴 수입차 업체들이 PDI(배송 전 검사) 센터에서부터 하부 부식을 철저히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랜드로버만 안일하게 대응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 2곳과 국내외 자동차부품업체 3곳 등에도 이번 하부 부식과 부품 방청 처리 미흡 등에 대해 문의했다.
모두 ‘만약 녹슨 부품을 완성차 제작에 사용했다면 상식이 없는 행위이며 불가능한 일이다. 바다를 건너서 수입되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가 방청 처리를 철저히 했어야 했다. 새 차가 부식됐다면 성능에 문제가 없어도 품질에 하자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입차 업체 판매사 중역으로 있었던 한 관계자는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대응은 자칫 수입차 브랜드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며 “이는 향후 판매 실적에도 영향이 갈 수 있는 문제”라고 충고했다.
벤츠·BMW “방청작업·관리 철저히 하고 있어”
랜드로버와 달리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BMW그룹 코리아는 하부 부식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진행 중이다.
벤츠 코리아는 “차량을 생산할 때부터 방청 작업을 해 국내에 들어온다”며 “국내에 들어와서도 다시 PDI 과정에서 차량 부식을 포함해 하부를 점검하고, 만약 부식이 발견되면 녹을 제거 후 방청제를 도포하는 등의 처리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방청 처리가 잘 돼서 오기 때문에 소비자가 차량을 인도 받은 후 생기는 녹을 제외하고는 부식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BMW코리아도 “생산일을 따져 일부 차량에 대해 방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추가로 PDI 진행 시 모든 차량에 대해 하체 방청 작업을 진행하고 특히 하체 부식이 심한 경우 부품 전체 교환 및 방청 작업을 한다”며 “심각한 경우는 아예 일반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구체적으로 하체 방청 작업은 볼트류나 철이 함유된 부품 등 녹이 발생할 수 있는 위치에 전부 블랙 왁스 등으로 방청 작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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