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새해 첫 해넘이를 보고자 달려간 국립공원 변산반도에 있는 솔섬 앞바다. 그러나 무심한 해는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국 부끄러운 듯 운해(雲海) 속으로 얼굴을 감추고 말았다.

삼대(三代)가 덕(德)을 쌓아야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日出)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럼 솔섬 앞바다의 일몰(日沒)은 또 몇 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리던 중 해창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새해 첫 달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새해 첫 월출(月出)이었다.

아~ 맞다! 달, 네가 있었구나. 해가 그 빛을 거두면 세상은 그대로 암흑천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달이 있어서 어둠을 밝히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던가? 또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외조부는 그믐을 ‘지하(地下)에 뜬 만월(滿月)’이라고 했는데, 캄캄한 그믐날에도 지하에는 휘영청 밝은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는 또 얼마나 대단한 것이던가!

그렇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비록 달이 없는 그믐에도 지하(地下)에는 보름달이 떠 있다. 즉, 언제고 빛이 있어서 어둠을 물리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섭리이다. 큰 희망을 품고 시작하는 경인년에는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기억하면서 어떤 순간에도 우리네 삶 속에서 빛을 잃어버리면 안 될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어떤 이는 백주(白晝) 대낮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밤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또 밤이라고 다 같은 밤은 아니다. 정월 대보름도 있고, 섣달그믐도 있다.

하지만 모두 이것을 기억할지어다. 언제나 빛은 있었으되 다만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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