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국정원은 27일 공식적인 발표에서 지난 18일 숨진 채 발견된 국가정보원 과장 임모(45)씨가 삭제한 국정원 해킹 관련 자료는 모두 51건으로 이 가운데 31건이 국내 실험용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해킹 프로그램은 해외 북한 공작원만을 대상으로 사용했다’는 국정원장의 애초 해명과 배치되는 데다, 민간인 사찰용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임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의혹이 없지 않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국가 정보기관의 정상적인 활동이 마치 불법행위로 오인되는 식의 사건전개가 아니라 북한을 적으로 두고 첩보전을 수행하고 있는 국정원이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사실 여부에서 초점이 있어야 맞다. 마치 약점을 잡았다는 식으로 국정원이라는 국가정보기관의 대북 정보활동을 공개하라는 식의 과도한 요구는 자제되어야 한다.

사건의 진위를 떠나서 국정원의 임무수행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하는 탄식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조직원이 자신의 임무수행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을 가졌다면 어떤 경우에도 당당하게 사건수습을 책임져야 함에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국가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린 것은 무책임을 넘어서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사건에 관한 여야정당이 보여주는 정쟁은 국가안전보장과 국가비밀이라는 가장 소중한 보호가치조차도 고려하지 않는 몰상식한 폭로전으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음은 유감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적 해법은 모든 선량한 국민들을 국가정보기관의 해킹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가 입법발의를 통해서 국정원을 통제할 장치를 구축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해킹사건을 국정원의 무력화와 대국민 불신확산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역설적으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간첩과 종북 좌익분자들이 실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암약(暗躍)이 국가안전보장을 위해롭게 하기에 감시와 해킹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투시(逆透視)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손자병법의 모공(謀攻) 편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 하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롭지가 않다”는 명언이 있다. 한 마디로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을 어떻게든 알아야 하는데 바로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의 필수 기관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부의 적과 우방국도 감시해야 하는 이중성(二重性)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권과 무관하게 국가정보기관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집권세력의 하수기관으로 전락되어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우리의 해킹 대상은 바로 우리를 해킹하려는 북한이라는 적과 추종세력과 간첩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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