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선동 ‘헬조선’을 경계하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1340여년 전 멸망한 백제국을 다시 일으키려다 주류성에서 패해 일본으로 망명했던 전사들은 배를 타며 다음과 같이 비통하게 울었다.

“아! 이제 조상의 뼈가 묻힌 이 땅을 다시 밟을 수 없게 됐구나!”

당시 전사들의 심정을 기록한 것은 우리 기록인 삼국사기가 아니었다. 일본서기에 백제 복국운동의 실패와 그들의 나라를 잃은 한이 기록된 것이다. 일본서기를 기록할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백제전사나 후손들이 참여하지 않았을까.

문무왕 15년(AD 675) 신라는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한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지만 대당 투쟁을 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당 측천무후가 신라왕을 잡아오라는 칙명을 내린 것이다.

당은 말갈 장수 이근행을 선봉장으로 삼아 고구려 수도 평양성에서 20만 대군을 내려보낸다. 당시 주변 국가 같았으면 왕은 항복하고 자진해서 측천무후 앞으로 나가 부복하고 대죄했을 게다. 그러나 신라는 달랐다.

당나라군이 만약 왕경 서라벌을 점령하면 신라는 통일대업이 물거품이 될 뿐 아니라 민족의 존립마저 어렵게 된다는 것을 절감했다. 신라는 20만 대군을 막기 위한 절박한 전략을 세운다. 그것이 이들의 남하를 막는 작전이었다.

어디에서 20만 대군을 저지할 것인가. 신라는 고구려 남진 길목인 매초성(지금의 연천 초성리)에 진을 치기로 했다. 신라군은 젊은 화랑도(郎幢)를 전진 배치하고 조직적이며 가장 과학화된 첨단 병기를 가지고 당나라 대군과 싸운다. 이 결과 이근행이 이끌던 20만 당 연합군은 대패하며 살아 돌아간 병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신라군의 저항에 놀란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만주 땅 심양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다.

젊은 전사들은 이 전쟁에서 놀라운 용맹을 발휘했다. 삼국사기 기록은 얼마 안 되지만 김유신 장군의 아들 원술랑이 이 전투에 참가 용맹을 떨쳤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가 무적의 낭당을 지휘한 것인가. 삼국사기 기술이 너무 축소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신라 전사들은 왜 매초성에서 결사 항전한 것일까. 그것은 신라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라를 잃은 국민은 노예가 되며 정복국을 위한 희생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전사들이 지킨 신라는 대대로 왕위를 스스로 결정하는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이 역사적인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중국의 일개 성(省)으로 전락하여 중화됐을지도 모른다.

조선은 근대화에 늦어 일본의 식민지가 됐었다.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은 불과 70년 전이다. 당시 우리 민족은 어떤 운명이었나? 말과 문화와 전통은 무참히 말살되었고 많은 지식인과 애국자가 처형됐다. 일제를 피해 수십 만명이 중국으로 시베리아와 다른 나라로 망명, 유랑했다.

우리는 지금 나라의 소중함을 잊고 있다. 나라를 잃고 2000년간 유랑하던 이스라엘민족을 보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에서야 조국 가나안땅으로 돌아갔다. 이스라엘 민족처럼 나라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요즈음 젊은 세대 사이에 인터넷상에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지옥(hell) 같은 조선(한국)’이라는 의미로 한국 비하와 탈한국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죽창을 달라’라는 용어까지 등장한다고 한다. 과연 이런 선동을 방관해야 되겠는가.

나라가 제일 소중하다. 젊은 세대들은 나라를 잃어버린 과거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헬조선’이란 용어는 국가 이익이나 민족의 장래를 위해 쓰지 않아야 할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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