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헌·종법 무시 재심판결 해법찾기 “귀 열고 종도들에게 물어보라”
[천지일보=박준성·김현진 기자] 의현스님 재심판결 사태가 조계종을 뒤흔들고 있다. 종단 소속 승려 342명이 의현스님 복권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무효화를 외쳤다. 이들은 29일 열리는 ‘100인 대중공사’가 서의현 전 총무원장 사면의 문제점을 감추거나 종도들의 비난을 막는 방패막이가 되지 않도록 논의의 공정성과 합리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한 논란의 중심에 선 재심호계원장과 호계위원들의 즉각 사퇴와 집행부를 이끄는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교육원장, 포교원장을 향해 사태 해결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종단개혁 정신 계승과 종헌·종법 수호를 염원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342인’이라고 밝힌 스님들은 지난 27일 선언문을 통해 “94년 종단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서의현 전 총무원장이 호계원의 재심을 통해 사실상 복권되는 등 종도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는 종헌·종법에 대한 유린이고, 종단 개혁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결정이다. 당시 종단 개혁을 지지했던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계종 소속 342명의 스님들은 호계원(종단 사법기관)의 재심판결에 대해 “심리절차가 개시되고 공권정지 3년이라는 사실상의 복권이 1시간여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졸속으로 결정됐다”며 “이로써 종단의 위의(위엄이 있고 엄숙한 태도)가 땅에 떨어진 것에 대해 수많은 종도들이 통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판결 ‘무효화’ 호계위원 사퇴 한목소리
이들은 의현스님 재심 결정을 “전면 무효화하라”고 요구하면서 호계원장을 비롯한 재심호계위원에 대해선 “모든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재심판결 후 종단 안팎에서 반발이 확산되자 조계종은 종도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9일 ‘서의현 재심 결정을 통해 본 종단개혁’을 주제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를 연다. 이에 대해 스님들은 “94년 종단개혁 정신 계승을 위한 실천적인 대안을 찾는 유의미한 자리가 되길 요구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스님들은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3원장 스님에게 “종단개혁 정신을 계승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이번 사태를 여법하게 해결해야 한다”면서 “총무원 집행부는 대중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종도들의 공의에 따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중공사 이후에는 책임있는 자세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거 두 차례 총무원장을 지내면서 은처, 불륜, 부정부패 등 온갖 의혹을 받은 의현스님은 1994년 3선 연임을 시도하면서 종단개혁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현응스님(현 조계종 교육원장), 명진스님(현 중앙종회의원), 도법스님(현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등을 비롯한 승려들이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를 구성해 3선 반대와 종단 개혁을 요구해 의현스님이 사퇴하면서 일단락됐다. 이 사태로 100여명이 징계를 받았고 의현스님을 비롯한 9명이 멸빈(영원히 승단에서 추방)됐다.
최근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모임인 삼화도량은 재심판결에 대해 “94년 종단개혁 이전으로 돌아간 조계종의 현주소를 대외에 천명한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앙종회 나서 진상조사 후 공론화
재심호계원의 재심판결 사태로 이를 비판하는 불교계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94년 불교개혁정신 실천 비상대책회의’ 2차 토론회가 지난 27일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만해NGO센터에서 ‘서의현 사태 심층분석과 길찾기’란 주제로 열렸다.
‘서의현 사태의 복합적 의미와 운동 방향’이란 주제로 발제한 이도흠 교수는 의현스님 사태는 종법에 명시된 절차를 무시하고 이뤄진 밀실야합이라고 강도 있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서의현 재심판결은 종법과 종헌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이보다 더 큰 권위를 갖는 전국승려 대회의 결정까지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해법이 삼권분립과 법조문을 지키는 선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종단 대의기관인 중앙종회가 재심판결 과정을 철저히 조사한 후 이에 대한 진실을 공론화해 종도들의 이해를 구해 사태를 마무리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호계위원들이 판결에 대한 법적 및 절차상의 문제를 공표해 판결 자체를 무효화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총무원이 재심 판결을 무효화하면 삼권분립이 무너질 것을 우려했다. 그는 총무원이 사태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서 행정적 절차를 진행할 경우 더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비친 것이다.
다만 이것으로도 문제가 남으면 종헌을 개정해 헌법재판소와 같은 기구를 두거나 승려대회에서 이를 무효로 결의하면 된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