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청용 ⓒ볼튼 원더러스
[2010년대를 빛낼 20代 10名의 스타들 ③ 이청용]
2010년대 한국 축구 '대표주자' 단숨에 자리매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고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 달려가 얼싸안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모습을 부럽게만 바라보던 한 소년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중학생(중2)에 불과한 어린 소년이었다. 그런 박지성을 보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어느덧 8년이 지나 그 소년은 박지성의 뒤를 잇는 한국 축구의 대표주자로 단숨에 발돋움했다. 바로 이청용(22, 볼튼 원더러스)이다.

한일 월드컵이 끝난 다음해인 2003년 이청용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프로에 입단하는 것. 당시 FC 서울을 지휘하고 있던 조광래 감독은 이청용의 플레이를 보고 반해 이청용을 프로에 입문시켰다.

이청용도 이왕 축구선수로 대성한다는 마음을 먹은 만큼 큰 망설임 없이 중학교 중퇴라는 결단을 내리고 프로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지난 2004년 서울에 입단한 이청용은 2006년부터 출전의 기회를 잡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 K리그 최고 명문팀 서울의 주전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또 조동현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서 브라질 등과 기량을 겨루며 세계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인 이청용을 허정무 감독이 놓칠 리 없었다. 결국 지난 2008년 3월 북한과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3차 예선 당시 대표팀에 포함됐고 요르단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그의 기량은 A매치에서도 통했고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대표팀 부동의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발돋움했다.

A매치에서 보여준 기량은 곧바로 유럽 무대까지 퍼졌다. 이청용에게 제의를 해온 것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풀럼과 볼튼 원더러스. 그러나 아직 21세에 지나지 않은 이청용을 완전 이적하는 데 부담을 느낀 풀럼이 한 발짝 물러서면서 볼튼 원더러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청소년 대표팀과 K리그, A매치 등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은 눈부셨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견이 엇갈렸던 것이 사실. 박지성과 이영표(33, 알 힐랄) 등만 성공을 거뒀을 뿐 나머지 선배들은 눈물만 흘렸던 곳이 바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였다. 180cm에 69kg로 호리호리한 그가 강한 몸싸움을 즐겨하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오히려 많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고 ‘뻥 축구’로 일관하던 볼튼 원더러스의 경기 스타일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그를 신뢰하던 게리 멕슨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긴 했지만 그가 보여준 경기 모습에 지역 언론과 팬들은 감독이 바뀌더라도 그의 주전 자리는 확고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이청용은 새해 벽두에 벌어졌던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에서 골을 넣으며 잉글랜드 진출 4번째 골을 넣었다. 잉글랜드에 데뷔했던 지난 2005/06 시즌에 3골에 그쳤던 선배 박지성을 벌써 뛰어넘은 기록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파릇파릇했던 박지성이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면 2020년이 되어도 32세에 불과한 이청용은 201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어가는 재목이다. 벌써 그 중심 이동이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의 첫 번째 성인무대 시험장소는 다름 아닌 올해 벌어지는 남아공 월드컵이다. 8년 전 박지성을 동경했던 중학생 이청용은 이제 박지성과 한국 축구의 좌우 측면 공격을 담당하게 된다. 그가 볼튼 원더러스에서 하는 것처럼 남아공 월드컵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한다면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은 더욱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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