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관원 이물비. ⓒ천지일보(뉴스천지)
단돈 1000원으로 허기진 배 채울 수 있는 정겨운 식당
배고픈 연극인·노인들을 위한 사장의 배려로 운영돼
하루 딱 100그릇만 판매… 한 그릇에 고작 100원 남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떡볶이 등 분식을 사먹을 수 있었던 1000원.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15년 7월 현재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떡볶이는커녕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도 250원을 더 얹어야 탈 수 있다. 저렴하다는 노량진 컵밥도 3000원이 넘는다. 할아버지가 예쁜 손주한테 용돈으로 1000원을 주면 눈치 보이는 세상이 됐다.

이처럼 삭막한 세상이지만 1000원의 값어치가 제대로 발휘하는 곳이 있다. 1000원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구관원 이물비’가 바로 그 곳이다.

‘구관원 이물비’는 젊음과 문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거리 대학로에 있다.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와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눈에 띄는 식당이 있다. 식당이라기보단 만물상처럼 장독대부터 타이어까지 다양한 물건이 진열돼 있다.

지난 23일 한창 배고플 시간인 낮 12시. 조심스럽게 ‘구관원 이물비’에 문을 여니 입소문을 타고 온 손님들로 네 테이블 중 두 테이블이 차 있었다.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하고’ ‘꿈도 이루고’ ‘낙산 가는 길’ 테이블마다 이름이 붙어 있었다.

“‘천만원 설렁탕’ 한 그릇이요.”

하고 외치니 직원이 20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좀 있으니 매콤한 고추가 곁들여진 전과 소주잔으로 3잔 나올 정도의 막걸리가 나왔다. 전 안에 든 재료는 빈약했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엔 충분했다. 곧이어 돌솥 밥이 나왔다. 밥을 걷어내고 그 안에 설렁탕 국물을 붙는다. 직원의 안내대로 파와 두부, 국수를 넣자 국물이 보글보글 끓었다. 설렁탕 한 그릇의 가격은 1000원. 적은 돈으로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연극을 좋아해 대학로까지 오게 됐다는 사장님. 공원을 다니는 어르신들, 대학로의 배고픈 연극인들에게 천원이지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곳에도 규칙이 있다. 하루에 단 100그릇, 한 사람에게 한 가지 음식만 판매하는 것이다. 또 음식값은 반드시 소화기에 직접 넣어야 한다. 1000원을 내기 미안해하는 손님들을 위한 사장의 배려라고 한다.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시민들은 식당에서 훈훈한 인심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김경자(가명, 62, 여)씨는 “전에 왔을 때도 저렴한 가격에 맛있게 잘 먹고 가서 이번엔 친구와 함께 다시 찾았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 1000원으로 배부르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장성덕(가명, 58, 남)씨는 “공원에 갈 적마다 들려서 한 그릇씩 먹고 간다.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어 단골이 됐다”며 “설렁탕에는 정성이 담겨야 하는데 이 집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과연 천원으로 식당이 운영될까? 사장이 건물주라 집세를 낼 필요가 없고, 농사를 모두 직접 지어서 단가를 낮췄다. 설렁탕 한 그릇을 팔면 딱 100원 이윤이 남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1000원에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관계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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