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림자
이순희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에게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고 간다.

자신의 비밀과 허물을 뱀처럼 벗어놓고서
다행히 그에겐 모든 숨겨줄 깊은 골짜기가 있다

그런 그가 깊고 조용한 그녀를 보는 순간
그동안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다 풀어놓고 싶어졌다

어머니의 고요한 품을 더듬어 찾듯이
그 응달에 다 품어내고 싶어졌다

[시평]
모든 사물들, 모든 존재들에게는 그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란 실체가 아닌 다만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지만, 때로는 그 실체가 드러내지 못하는 넉넉한 그늘이 되기도 한다. 다른 이를 품어줄 수 있는 그늘. 그래서 그 그림자가, 그 그늘이 넉넉해야 만이 그 존재가 넉넉하다고 할 수 있다.

산 그림자는 산의 넉넉한 품이다. 그 그림자 밑에 아담한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그 그림자 안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때로는 그 사람들 그 그림자에 자신을 묻고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기도 한다.

산 그림자가 넉넉한 것은 산이 다만 크기 때문만이 아니리라. 그 산은 모든 것을 품어주고 또 숨겨 줄줄 아는 많은 골짜기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만 그림자만이 아닌 골짜기를 지닌 그림자. 그래서 더욱 깊이 품어 줄 수 있는 그늘을 지닌 산.

우리는 아마도 이런 골짜기를 지닌 산과 같은, 산 그림자와 같은, 넉넉한 그늘의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에 쌓인 응어릴 모두 풀어놓을 수 있는. 그래도 모두를 감싸주고 또 숨겨줄 수 있는 그러한 넉넉함. 우리는 살아가며 때로는 그리워지는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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