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지구촌의 화두는 평화일 것이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의 소망은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시대가 이 땅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었을 게다.

인류의 역사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류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끊임없이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고, 내전과 분쟁,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에서 갈등과 전쟁을 뿌리 뽑지 못한 것은 남을 정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욕심과 교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전쟁. 이는 사람을 비롯한 만물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일이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식 있는 모든 것들 중 그 생명이 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 중 하나가 자기 목숨도 귀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목숨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함도 있지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이들로 인해 희생당하고 학살당하는 일이 인류 역사 이래 결코 적지 않았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해도 된다는 생각.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소인배와 같은 행동이 빚어낸 결과는 그야말로 처참하다.

지구촌이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의 새 시대를 만들어가자고 뜻을 모으고 있는 지금 시대의 흐름과 반하는 행동으로 국제사회뿐 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지탄을 받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바로 우리와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다.

아베 신조 내각이 지난 16일 집단자위권 인정을 주 내용으로 하는 안보 법안을 중의원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이후 “아베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구호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일본 열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아베 내각 지지율이 35%로 급락하기도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집단자위권은 자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가 무력공격을 받았을 시 이를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피공격국을 원조해 공동으로 방위할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말해 자국이 직접 공격당하지 않아도 실력으로 저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일본 국민이 아베 내각의 이번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일본이 자칫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는 일본 내 민심과도 동떨어진 행보다. 극단적으로 말해,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인정하게 되면 기존의 전쟁 포기 조항은 사문화되고 신설된 모호한 기준에 따라 주변국을 돕는다는 핑계로 전쟁을 유도할 수도 있다. 당연히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0일 후지TV에 출연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 강행 배경에 대해 “도둑과 강도로부터 집을 지키려는 문단속이다.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도둑과 강도로 빗댄 국가는 사실상 중국을 의미하고 있으며, 뒤이어 북한의 위협까지 언급한 것은 집단자위권의 타당성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일본 헌법 9조에서 허용하고 있는 자위권의 행사가 일본을 방위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범위라고 해석할 때,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 범위를 넘는 것으로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헌법 제9조 2항에는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자위권 행사에 관해서는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하고 있으니 자칫하다간 아베 내각의 의도대로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아베 내각은 지난해 7월 임시 각의를 열어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헌법 해석을 변경하기도 했다. 오는 9월 말까지는 참의원에서 안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까지 내보이고 있다.

사실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걸어온 행보를 보면 아베 총리가 숨기고 있는 그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메이지시대 근대산업시설만 봐도 그렇다.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까지 고스란히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아베의 속뜻은 군국주의 시절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다 못해 동경하고 있으며, 다시금 동북아 맹주로서의 일본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일본뿐 아니다. 스스로를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강대국이라 자부하는 일부 국가들 또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인류는 더 이상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 무력과 국부(國富)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정신문명의 시대로 흐르고 있는 만큼, 세상은 총과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국익을 위한 전쟁에 목말라하고 있는 이들의 그 생각과 사상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위한 새 시대를 만들어가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의 그 우매함에 실망할 뿐이다. 전쟁과 분쟁, 갈등을 일으키는 정부를 좋아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국민은 그 어디에도 없다. 더불어 살지 않으면 이제 더 이상 지구촌에 발붙이고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제발이지 과거 전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으로 집어넣었던 그 시절에 누렸던 영화를 훈장처럼 생각하지 말고, 역사 앞에, 인류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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