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빛
백숙천(1946~2015)
세상 일 다 해낼 수 없다
다만
나에게서 나를 놓는 일
나를 펴는 일 먼저이다
진실로
광기 욕망 미혹 떠나서
웃을 때와 울 때를 가려
투명한 빛이고 싶다
눈에 시지 않게 어둡지 않게
잔잔히 밝히는
향초이고 싶다

[시평]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떤 바람이나 욕망들이라는 것이 있다. 그 욕망들이 모두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도 또한 우리에겐 있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하나둘 접어버려야 하는 바람이나 욕망들, 그 또한 우리에게 생긴다. 이렇듯 욕망을 하나둘 접어가면서, 어쩌면 우리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일 모두 이룩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다만 나에게서 나를 놓는 일, 나를 펴는 일이 먼저임을 터득하게 된다. 나를 놓는 일, 나의 욕망을 내려놓는 일. 그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눈에 시지도 않고, 또 어둡지도 않은, 세상을 잔잔히 밝히며 살아가는 그 투명한 빛, 투명한 빛을 발하는 향초와도 같은 삶이리라. 나를 버릴 때, 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나의 진면목이 보이고, 그래서 내가 드러난다는 그 진실을, 그러나 우리는 과연 언제쯤이나 스스로 터득하고 또 실천해나갈 수 있을까. 삶이란 늘 미욱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이러함을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 범인들이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