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우리사회에서 전염병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계기였다. 앞으로 전염병 유행에 철저히 대비한다면 귀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건이기도 했다. 전염병과 관련해 정부가 간과하는 부분은 ‘지구온난화’다. 온난화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지구는 자정능력을 잃었다. 그 결과 전염병이 더욱 빠르게 창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지구의 온도는 매년 올라가고 있다. 이를 인지한다면 대처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번 연재기사를 통해 온난화와 전염병, 그리고 대처 방안에 대해 알아보자.

▲ ⓒ천지일보(뉴스천지)

‘임시방편’인 컨트롤 타워
대책기구 난립에 혼선 빚어
정부·지자체 간 이견도 생겨

신종전염병 6년마다 유행
전문가 “국내 대비 미흡”
공공병원, OECD 평균 이하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적을 모르니 당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메르스가 국내 의료시스템의 허를 찌를 줄 상상도 못했다. 해외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던 국내 의료시스템의 속살은 이번 사태로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지난달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의 상황은 모든 국가가 예기치 않은 전염병에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메르스는 전염병이 언제든,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언급했다.

◆되풀이되는 ‘엉성한 대응’

문제는 앞으로 국내에 닥칠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나라는 신종전염병 대비에 미흡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전염병 발생 현황을 보면 사스(SARS, 2003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2015년) 등 위험성이 큰 전염병은 6년에 한 번 꼴로 유행했다. 이 가운데 사스와 메르스는 여전히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신종플루 사태 당시에도 백신과 치료약을 초기에 확보하지 못하면서 정부 대응 능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신종전염병 유행이 이어지면서 백신과 항생제 개발의 중요성 역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개발 단계인 것이 많아 현재로선 전염병 대응에서 방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엉성한 방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현실이다. 실제로 중국발 사스 창궐 당시, 국립보건원과 전국 13개 검역소를 통합하고 예산과 인력을 보강한 ‘질병관리본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WHO에 의해 ‘사스 예방 모범국’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는 평이 컸다.

2009년 신종플루 국내 첫 환자가 나왔을 때는 발병 이후 확진 판정이 늦어졌다.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친 게 드러났고, 보건당국과 일선 의료기관 대응체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메르스 때는 더 우왕좌왕했다. 지난 5월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나온 후 각 부처·본부·자치단체 대책본부가 우후죽순으로 가동됐다. 중앙메르스 관리대책본부(보건복지부),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국민안전처), 긴급대책반 합동상황실(청와대, 24시간 운영) 등이 운영됐지만, 지휘 체계에 혼선만 빚었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복지부와 관계기관과의 이견이 생기기도 했다.

▲ (자료출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공공의료 병상 수, 여전히 부족

전염병 환자를 치료할 공공병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공공병원 부족을 지적해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병원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19개다. 이는 OECD 24개 회원국의 평균인 3.25개의 절반 수준.

전체 의료기관의 병상 수 중 공공의료기관이 차지한 비중은 9.5%(2013년 기준)에 불과했다. OECD 국가 평균은 75%다.

이유는 수익성이다. 전염병 환자를 치료해야 할 공공의료병원을 적자가 난다는 이유로 강제 폐업시키거나 규모를 축소한 것이다. 최근 없어진 진주의료원이 대표적인 실례로 꼽힌다.

진주의료원은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창궐 당시 거점치료기관으로 지정돼 5개월 동안 1만 2000여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다. 그러나 2013년 강제 폐업됐다. 그 결과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달 3일 경남 사천의 메르스 의심환자는 20㎞ 떨어진 진주의료원 대신 120㎞나 떨어진 양산 부산대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신종플루 당시 진주의료원이나 지방 의료원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진료했지만, 위기 상황이 지나가면 정부는 그 노력을 모두 잊어버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병원이 설사 적자를 낸다고 해도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이므로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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