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참전용사 윤우섭(84)씨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보름 정도밖에 안 남았네. 여기저기 다니면서 방 알아보고 있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3일 오후 4시께 서울 동작구 상도1동.

6.25 참전용사 윤우섭(84, 남)씨가 좁고 어두운 골목에 들어섰다. 작은 철문이 보이자 윤씨가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윤씨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문이 활짝 열리기도 전에 벽과 부딪혔다. 통로였다. 왜소한 성인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이 통로를 몇 발자국 걷자 진짜 윤씨의 보금자리가 나왔다.

집안은 깨끗했다. 가구도 몇 개 없었다. 부엌에 들어서자 녹슨 가스레인지에 라이터 한 개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욕실 겸 화장실은 높이가 낮아 허리를 세울 수 없었다. 얼마 전 TV를 없앴다는 윤씨의 방 안엔 선풍기 한 대와 좌식 책상, 서랍이 놓여 있었다. 다른 옷들과 달리 참전용사 유니폼만 하얀 봉투에 가지런히 보관돼 있었다. 그만큼 애착이 가는 옷이다.

윤씨는 이곳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자식들은 분가했다. 아내(82)는 치매를 앓아 1년 전부터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윤씨는 “아내도 6.25 전쟁 때 고생을 많이 했다. 처남을 잃었다. 젊었을 땐 처남의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함께 이곳저곳 다녔는데 지금 이렇게 치매에 걸려 안쓰럽다”며 푸석한 얼굴을 손으로 매만졌다.

윤씨는 19살 때 6.25 전쟁을 겪었다. 보충병이었던 그가 휴전되던 당시 있었던 곳은 동부전선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고향인 양평으로 돌아왔다가 철원과 금화에서 또다시 4년 정도 군 생활을 이어갔다. 윤씨는 “지금 청년들은 호강하는 거다. 우린 그 나이 때 전쟁도 겪고, 굶어도 봤다”며 “너무 지긋지긋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제대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전쟁 등 힘든 시기를 겪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열심히 살아온 그이지만 현재 생활은 녹록지 못하다.

윤씨는 매달 아내의 병원비를 내고 있다. 월 평균 45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아내의 병원비 등을 내고 나면 윤씨가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은 20만원 정도다. 윤씨의 한 달 수입은 이렇다. 정부가 참전유공자에게 주는 18만원과 서울시가 주는 5만원, 노령연금 32만 4000원(부부 기준), 일해서 버는 20만원 등 총 75만원가량이다. 젊은 시절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보증금과 달마다 조금씩 버는 돈이 전부다.

윤씨는 “점심은 사회복지관에서 먹는다”며 “TV도 없앴고, 물이나 불도 적게 사용하고 있어 근근이 생활할 수 있는 형편은 된다”고 안심시켰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살고 있는 윤씨지만 최근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집주인으로부터 집이 팔렸다며 8월 초까지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딱 보름이 남았다. 계약기간(2년) 이후에도 조금씩 기간을 연장해 살았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지만 갑작스러운 통보에 앞길이 막막하다.

윤씨는 “보증금으로 이 한 몸 들어갈 방 한 칸 못 구하지는 않겠지만 월세를 내면서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서 걱정이 된다”며 달력을 쳐다봤다.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윤씨는 “그래도 나는 괜찮다. 유공자로 등록 안 된 사람들도 많지 않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말한 윤씨는 “전쟁터에 나갔다고 해서 정부의 형편도 생각 안 하고 계속 바랄 수도 없는 것 같다”며 끝까지 나라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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