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적은 참전명예수당
품위 유지비도 안 돼”
유공자, 예우 수준에 분통
“누가 나라 위해 싸우나”
인상 법안, 3년째 제자리
정부, 예산 문제로 난색
“전향적 검토해야” 목소리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 6.25전쟁 당시 군인으로 입대했던 김모(83)씨. 죽고 죽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 현장에 뛰어들었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제대했다. 그러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그에게 찾아온 건 길고 긴 가난이었다. 모아놓은 재산도, 변변한 수입원도 없는 김씨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매달 20만원이 약간 넘는 참전명예수당을 받고 있다. 이마저도 여기저기 아픈 몸을 치료하고 약이라도 타서 먹으면 남는 게 없다. 김씨는 “내일모레 죽을 사람인데, 국가에서 참전유공자를 너무 푸대접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참전명예수당에 대한 참전유공자들의 원성이 크다. 현재의 수당으로는 품위 유지는커녕 생활고조차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노병들의 희망사항은 정부의 예산 논리에 막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올해 65세 이상 참전유공자에게 월 18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참전군인등지원에관한법률’ 개정을 통해 2002년부터 참전유공자에게 월 5만원씩 지급됐던 수당은 조금씩 인상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별도의 기준에 따라 몇만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참전유공자가 최종적으로 받는 금액은 20만원이 약간 넘는다.

◆유공자, 최저생계비 50% 이상 법제화 요구

▲ 참전명예수당 연도별 월 지급액 현황. ⓒ천지일보(뉴스천지)
참전유공자들은 “너무 적은 금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6.25참전유공자회 손정달 조직국장은 “월 18만원이라는 돈은 참전유공자의 공헌에 걸맞지 않은 너무도 적은 금액일 뿐 아니라 외국의 예와 비교해도 부끄러운 금액”이라며 “참전자 예우가 지금과 같이 부당하면 앞으로 국가 위기 시에 어느 누가 군에 가서 목숨 바쳐 싸우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6.25참전유공자회에 따르면 6.25참전군인 생존자는 약 15만 7000명으로 평균 연령은 85세다. 이 가운데 매년 1만 5000명~2만명이 고령으로 사망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10년 안으로 대부분의 참전군인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공자회는 이들 대부분이 중풍, 치매, 당뇨 등으로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빠 국가적 지원이 시급하다며 참전수당 법제화와 의료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참전수당의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의 50% 이상으로 하한선을 규정하고 물가상승분과 연계해 달라는 것. 의료지원은 현행 규정에 따라 참전자 본인에 한해 보훈병원 진료비 60% 감면해주던 것을 배우자 포함해 100% 감면으로 강화해 달라는 것이다.

◆1만원 올리는 데 200억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저희들이 항상 기획재정부에 예산 요청을 하고 있지만, 수당을 1만원 올리는 데 전체적으로 200억원 정도가 든다”면서 “생존해 계신 분들도 얼마 안 남아 최대한 예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재정 문제가 걸리다 보니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수당 지급을 담당하는 보훈처는 처음엔 격년에 한 번씩 지급액을 인상하다가 최근 몇년간은 금액을 매년 올리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인상폭은 1만원에 불과해 참전군인들의 원성이 줄지 않고 있다.

몇몇 국회의원이 발의한 수당 인상 법안도 정부의 반대 속에 표류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참전유공자에게 매달 최저생계비의 50% 이상을 지급하는 내용의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3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13년엔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최저생계비 이상의 범위에서 지급액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감감 무소식이다. 법안이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갔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처리된 수당 인상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는 상태다. 정부 쪽에서 예산 등의 문제를 들어 법안 통과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야권 관계자는 “정부가 4대강 사업엔 20조원 이상 쓰면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게는 1/10도 안 되는 비용도 못 쓰겠다고 하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복지예산과 구분해야”

일각에선 참전유공자 수당은 다른 복지예산과 구분해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참전유공자들의 생존 기간에 제한이 있는 만큼 참전수당 현실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양대학교 군사과학과 이종호 교수는 “다른 복지예산은 한 번 반영하면 몇십년 이상 누적되는 예산이지만, 참전명예수당은 기간이 딱 정해져 있고, 한 번 반영해도 매년 그 규모가 줄어든다”면서 “생존 기간이 얼마 안 남은 분들을 위해 수당을 현실화시키는 게 우리 후세들의 도리”라고 말했다.

6.25참전 장병 유해 발굴사업 등을 해오고 있는 고진광(60) 인간성회복추진운동협의회 대표는 참전유공자 수당 관련 법안이 수년째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정부가 참전 용사를 홀대하고 있다”며 “그분들이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국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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