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이미 30년 전 얘기다. 일본에 사는 여대생 두 명이 백제 시기에 조성된 서산마 애삼존불을 답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에서 마애불까지는 7㎞ 거리로 당시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두 여대생은 저녁노을이 어둑어둑해지는 비포장 길을 걸어 마애불을 찾아갔다. 당시 부여문화원장이였던 고(故) 이석호씨가 마침 마애불을 답사하고 돌아가는 길에 두 여성을 만났다.

재일동포인 이씨는 시골 길을 걷는 두 일본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물었다.
“여성분들이 이 밤중에 어딜 가십니까?”
두 여성은 자신들은 일본 여대생이며 마애삼존불을 답사하기 위해 간다고 말했다.
“이 밤중에? 일본 여학생들이? 먼 시골 길을 위험하게….”

이 원장은 자신이 안내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여대생들은 흔쾌히 승낙하고 이원장의 에스코트 아래 무사히 마애삼존불을 친견하고 돌아갔다. 두 여대생의 불상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경건했고 진지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인들에게 있어 서산 마애삼존불은 최고의 경배대상으로 여겨진다. 왜 이 삼존불이 일본인들을 감동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들에 게 불교를 전수해준 백제 부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소위 백제 미소로 대변되는 서산마애삼존불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한 형태로 백제 마애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며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하나는 서산마애불을 가리켜 ‘이 같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한국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술회했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백제 문화재는 부여, 공주 외에도 경기 충청권과 전라권에 걸쳐 많이 산재해 있다. 태안에도 국보로 지정된 백제 삼존불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전남 강진군 월출산 월남사지에서도 백제 전성기의 와당이 출토되었다. 서울 풍납토성과 용인 안성에서도 백제 초기의 와당이 출토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충남 예산에는 백제시대 국방유적인 임존성이 있다. 백제 멸망 후 흑치상지가 이끄는 복국군이 최후까지 항전했던 이 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홍성에도 백제시대 산성유적이 산재하며 청양 칠갑산 자비성은 백제 최후의 왕도 주류성으로 비정되는 곳이다. 연기군 금남면 비암사는 백제 유민의 한이 어린 천불비상(千佛碑像)이 발견된 유서 깊은 곳이다.

서천 건지산성은 백제 무령왕의 진주한 왕성이며 반란군 백가를 토멸한 곳이다. 삼국사기 무령왕 조에 나오는 우두성(牛頭城)이 바로 건지산성으로 비정된다(동국여지승람의 기록). 청주 신봉동 고분군은 가장 광범위한 백제 시대 고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무기류와 토기들이 출토되어 3~6세기 백제 변방 유역의 문화상을 잘 알려주고 있다.

이번에 공주, 부여, 익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유적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지정은 경사스런 일이다. 뒤늦은 감이 있으나 세계적 조명을 일궈낸 노력을 높이 치하하고 싶다. 그러나 서산, 태안 마애불이나 예산 임존성, 서천의 건지산성, 연기 비암사 등 중요 유적이 빠져 아쉬움을 준다. 가능하다면 이 지역도 추가로 포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온조왕 시기부터 개로왕 시기까지 400년간 백제 왕도였던 한강유역 풍납, 몽촌토성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 시기 서울, 경기지역의 백제 유적과 산성 조사는 얼마까지 했는지…. 하남, 용인, 광주, 안성, 평택지역의 백제유적 조사는 철저히 했는지 짚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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