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마음 변혁할 때 세계 리드도 가능할 것”

국론이 분열되고 어지러운 가운데 2010년 새해가 밝았다. 지자체 선거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등
▲ 이윤구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천지일보(뉴스천지)
굵직한 이슈가 넘쳐나는 올해, 사회 화합과 종교 상생의 길은 무엇일까. 인제대 총장 등을 지낸 철학박사 이윤구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이하 이윤구)와 김동환 천도교 교령(이하 김동환)의 대화를 통해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 그리고 국민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천지일보 이상면 사장의 사회로 희망과 우려를 짚어봤다.

◆극한 절망 속 희망을 말하다

반목과 질시가 지난 한 해도 어김없이 지속됐습니다. 이렇듯 분열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난해를 진단해 주신다면.

이윤구=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면 정말 하나가 되어 일을 같이 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갈라지고 못 믿고. 하지만, 분열되는 동안 함께 하고자 하는 저변의 역에너지도 함께 형성된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을 보면 이게 나라의 국회인가 싶을 만큼 절망스럽습니다. 더는 나빠질 수 없는 극한의 상황입니다. 너무 극한까지 치달았기에 이제 좋아질 일만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한편으로는 시련을 이기면서 형성된 뛰어난 민족성과 역량이 세상에 발휘되고 있습니다. 요즈음 히브리족(유대인)들을 만나면 “유대인 더 못하겠다. 너희(한국인)가 가져가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긍정의 힘을 그들이 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새해에는 그간 뿌려진 화합과 배려 운동의 씨앗들이 상당히 결실하는 해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늘 두려워하는 마음 가져야

종교(宗敎)는 그 뜻을 본다면 으뜸가는 가르침입니다. 최고의 가르침이라면 사회의 정신적 리더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회 화합과 종교 상생을 위한 종교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 김동환 천도교 교령. ⓒ천지일보(뉴스천지)
김동환
=세상의 운세가 바닥을 치면 하늘을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더 극한 상황이 돼야 하늘을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져 정신세계는 오히려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하늘의 힘에는 못 미칩니다. 여전히 천재지변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불행히도 우리 민족 역사상 지금처럼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 천벌이 두렵지 않으냐’는 말은 깊은 두려움을 주었지만, 지금은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울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지심(敬畏之心)이 사라졌습니다. 종교인이 먼저 사람의 한계를 기억하고 경외지심을 회복하는 것이 화합과 상생의 첫 걸음입니다.

인내천(人乃天)이란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 대하기를 한울님 대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그렇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과 생명체를 한울님 대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어찌 지금과 같은 대립과 분쟁이 있겠습니까.

◆상생, 서로의 神 존중하면 길 보여

김동환=결론적으로 오늘날 사회갈등은 종교인과 종교지도자의 책임입니다. 종교는 사회 혼란, 불안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의 현실은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해 비롯된 것입니다. 나는 현대 종교일수록 물질과 멀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나 석가가 잘 입고 잘 먹었습니까. 종교인이 먼저 물질은 별거 아니며, 정신위주로 살아야 한다는 본을 보이면 사회구제의 본이 돼 많은 사람을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민족은 종교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큰 분쟁 없이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 측면을 잘 이끌어내 화합한다면 종교가 사회 화합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골목에서 국수, 만두, 빵 등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자기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자랑을 하더랍니다. 모양이나 형태는 다를지 모르지만 그 음식의 원료를 들여다보면 다 밀가루입니다. 종교는 이처럼 하나입니다. 자기 종교가 최고라고 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각 신앙인이 믿는 하느님, 한울님, 상제님, 부처님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서로 믿는 신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종교상생의 길은 가능해지리라 봅니다.

◆종교, 기본부터 바로 세워야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인내천 사상이 성서 로마서에도 보면 만물 가운데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경서가 전하는 도(道)는 하나인데 종교인들의 무지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배척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동환=팔공산 갓바위에 가면 수능시험 때 수많은 어머니가 와서 자기 자식 시험 붙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건 내 자식은 붙고 남의 자식은 떨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종교인에게 “왜 십일조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그만큼 더 수입이 들어오니 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내가 헌금한 것이 남을 구제하는 데 쓰이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헌금하는 자의 기본자세인데 돌아올 것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종교 지도자들이 기본부터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윤구=모든 종교가 좀 더 겸손해지면 좋겠습니다. 더 낮아지고 겸손해져 말을 줄이고 삶으로 표현돼야 합니다. 종교의 기초부터 다시 바로 세워야 합니다.

◆만국이 찾아오게 개혁할 때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정치인들은 지금 인기, 명예, 권력, 당리당략에만 물들어 있습니다. 국민 또한 편파와 편견내지 가치관의 혼란 속에 있습니다. 치유할 방법은 없습니까.

이윤구=오늘 우리가 처한 사항은 절망할 정도입니다.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이것이 나라를 이끈다는 정치인들의 모습인가 싶어 한숨만 나옵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은 공산주의를 해도 너무 지독하게 하고, 자본주의를 해도 너무 지독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독하기에 반대로 그렇게 좋아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0년도 사람의 힘으로는 (치유가) 안 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물질의 노예가 돼서 정신을 까먹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우수한 문화와 사회, 교육, 정치에 변화를 일으켜 만국이 대한민국에 배우러 오게 해야 합니다. 개혁, 개벽, 거듭남 모두 같은 뜻이라고 봅니다. 혁명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 때는 우리 민족에게 실망도 했지만 120여 개국을 다녀보니 결론은 ‘이 민족 괜찮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 이제 한국이 가져가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 아니겠습니까. 2010년에 개벽은 안 되더라도 개벽의 시작은 되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G20 정상회의에 몰려오는 세계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생각해 볼 때 우리만 가진 우수한 문화와 민족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백의민족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반만 년 넘게 시련을 당하면서도 타국을 점령하거나 타민족에게 피눈물 흘리게 한 적이 없는 걸 보면, 하늘이 이 민족을 들어서 크게 쓰시려는 섭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하늘이 우리에게 길러준 민족성을 끌어내서 새롭게 가야 할 때입니다.

과거에 간디 선생을 만나면 그분은 크리스천인 나에게 찬송가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한 걸음만 바로 걷게 해 주세요’라는 찬송 구절이 너무 좋다고 하셨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한 걸음만 바로 걷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종교란 처음부터 가진 것 내 놓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등기된 것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떠날 때 가볍습니다.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좋겠습니다. 종교인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유대인처럼 벌고 한국인처럼 쓰라’는 말이 생기도록 그렇게 세상의 본이 되면 좋겠습니다.

◆화합, 한계를 알고 싸우자

서기동래(西氣東來), 서쪽의 기운이 동쪽으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운이 한반도로 오니 좋은 일이 우리 민족에게 있을 징조라 여겨집니다. 마지막으로 국민과 종교인과 천지일보에 한 말씀 부탁합니다.

김동환=국민의 90%는 말이 없습니다. 10%가 말을 하고 여론도 그들에 의해 좌우됩니다. 정파싸움을 하는 이들은 싸우면 자신들의 표가 늘어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게 조장하는 이들이 가까이 있어 그들의 말만 듣기 때문입니다. 싸우면 표는 줄어듭니다. 천지일보를 통해 말하지 않는 90%의 소리가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신문이 때로는 문 닫을 생각하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지금 국가 혼란의 상당한 책임은 언론에도 있습니다. 언론이 기사를 쓰면서 손익계산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언론이 중심을 잡고 옳은 길을 묵묵히 걷는다면 언젠가는 지지하는 이들을 얻게 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그리 해주십시오.

종교인들은 자기의 신에게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 교화적인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종교가 할 일입니다. 정부, 여당에 대해서도 잘잘못은 지적하면서 균형 있게 비평해야 합니다. 싸우는 사람들은 서로 대치하고 대립하더라도 한계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노사갈등으로 싸우면서 자신을 먹고 살게 할 기계까지 부순다는 건 잘못된 겁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생쟁사(化生爭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합하면 살고 투쟁하면 죽는다는 뜻입니다. 너와 내가 따로가 아니고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으로 한계를 아는 지식인이 되어, 부디 안 싸우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윤구=우리 민족의 우수한 자질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마음이 겸손하게 변혁되면 세계를 리드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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